서울고법, 국가면제 이론 들어 각하 판단한 1심 취소

 

서울고법이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일본국은 이 할머니 등이 청구한 금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23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5)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을 나오면서 만세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주문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에게 별지 목록에 명시된 청구금액 전부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2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08호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5)는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두손을 모으고 재판장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재판장 구회근)는 이날 오후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법원의 ‘각하' 판단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했다. 이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은 2016년 12월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재판부는 “1심 판결과 달리 국제관습법상 일본국에 대한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 한반도에서 일본이 위안부를 동원한 불법행위가 인정돼 위자료도 지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일 위안부 협의 관련 청구권 소멸 문제와 시효 완성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지만 피고 쪽 항변이 없어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1심 선고 이후 헤이그 송달 협약에 따라 피고(일본 정부)쪽에 판결문을 송달했는데 반송됐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한국 재판부의 판결에 대응하지 않고 있어 이날 선고는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21년 1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또다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에도 일본 정부가 대응하지 않으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국제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는 반인권적 행위까지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국가면제란 한 국가의 국내 법원이 다른 나라 정부와 그 재산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 국가를 서로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국제법규칙이다. 다만, 반인권적 국가 범죄에 대해선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국제법상의 판례가 최근 나오고 있다.

이 할머니는 법정을 나서면서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정말 감사하다, 따로 할 말이 없다”면서도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 이재호 기자 >

 

‘위안부’ 손배소 이겼다, 이제 일본 정부에 직접 묻는다

서울고법, 1심 각하 뒤집고 2심 원고 승소 판결

피해자 쪽 “그간 승소·각하 엇갈려 진상규명 어려워

이제 장애 해소됐으니 일본 책임 있는 사과 촉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에게 청구금액 전부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2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08호실. 판사가 승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5)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모으고 재판장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2016년 말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 함께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11명이었지만 이제는 이 할머니 한명만 남았다. 이날 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국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이 모두 승소로 종결된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엇갈렸던 판결이 통일됐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을 촉구할 토대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재판장 구회근)는 이날 오후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총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법원의 각하 판단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 전부를 인정했다. 이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은 2016년 12월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판단을 가른 건 ‘국가면제’ 법리 인정 여부였다. 재판부는 “(최근) 국제관습법에 따르면 일본의 행위는 한국 영토에서 한국 국민에 대해 자행된 불법행위로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국가면제란 한 국가의 국내 법원이 다른 나라 정부와 그 재산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 국가를 서로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국제법 규칙이다.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 법리를 인정해 소송을 각하했다. 2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 행위의 불법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본국의 전신인 일본제국도 일본국의 현행 헌법 98조 2항에 따라 일본국이 체결한 조약과 국제법규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며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금지약’, ‘노예협약’,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등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제국 공무원들이 과거 형법 제226조에서 금지하는 ‘국외 이송 목적 약취·유인·매매’ 행위를 했을 뿐 아니라 일본제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했다”고 설명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인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 쪽 항변이 없어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한국 재판부의 판결에 대응하지 않고 있어 이날 선고는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할머니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국 정부의 대응을 촉구해오다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엔 ‘한국 정부에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승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정부의 자산을 강제로 매각해 배상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외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소송은 1차(나눔의집)와 이날 선고가 난 2차(정의기억연대·민변)로 나뉜다. 1차 소송은 2021년 1월 ‘일본 정부가 1억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이 났고, 곧 확정됐다. 하지만 이 소송의 원고들도 3년이 지나가도록 실질적인 배상은 받지 못했다.

1차 소송 원고들은 배상금과 소송비용을 받기 위해 재산명시 결정과 소송비용 추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국가면제 법리를 인용해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재산 목록을 공개하라’는 재산명시 결정은 다른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원고들은 이 결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 재단 출연금’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를 압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날 승소한 2차 소송 원고들은 ‘반환청구권 압류’ 대신 일본 정부에 직접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송을 이끈 권태윤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오늘 판결 전까지는 승소·각하로 판결이 엇갈려 진상규명 운동을 하거나 일본 정부에 배상 의무 이행을 촉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제는 장애가 해소됐고, 법원에서 피해자의 권리가 확인됐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직접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 이재호 기자 >

‘위안부’ 항소심 출석 일본 변호사 “일 정부 책임 면제한 1심 잘못”

 

전후보상 분야 대표 변호사 야마모토 세이타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제7차 변론기일인 11일 오후 증인으로 출석한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이용수 할머니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들머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각종 소송을 지원해온 전후 보상 문제 전문가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국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재판부가 최근 달라진 국제법 해석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항소심 재판부에 전향적 판단을 요구했다.

11일 서울고등법원 33민사부(재판장 구회근) 심리로 열린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재판에 야마모토 변호사는 원고 쪽 증인으로 출석해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페리니 판결’이 나온 뒤 10년 이상이 지났고, 그동안 상당히 변화했다”며 “당시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페리니 판결은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가 ‘국가면제’ 원리를 적용해 이탈리아 국적 페리니씨에 대한 독일 정부의 2차 세계대전 중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독일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었다.야마모토 변호사가 국제재판소 판결을 언급한 건 앞선 해당 소송의 1심 재판부가 소송을 각하한 건 근거로 페리니 판결 등 국제관습법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앞서 2021년 4월 1심 재판부는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해당 소송을 각하했다. 이어 페리니 판결을 언급하며 “일본에 대해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의 선고 및 그 이후의 강제집행 과정에서 일본과의 외교관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인권을 위해 외국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는 이미 대다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고 국제법 관습으로 자리잡았다”며 “인권 침해를 받은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 수단이 국내 법원인 경우, 피해자의 권리가 국가면제에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10명이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한 재판에서 피해자 대리인을 맡아 1심에서 이기는 등 전후 보상 분야 일본의 대표 변호사다.

이날 피고인 일본 정부 쪽은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에 나와 “14살에 (일본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해서 지금까지도 몸이 많이 아프고 수술도 받았다”며 “이후 위안부에게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30년 넘게 외치고 있는데, 일본은 아직까지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기시다 총리가 와서 마음이 아팠다는 거짓말만 한다. 너무 억울하고 서럽다”고 말했다.  < 권지담 이정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