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한국에 부흥회를 다녀왔다. 조크로 ‘등산을 갔다 왔다’고 했는데 부산이라는 산과 울산이라는 두 산이었다.
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교단도 다르고 두 교회의 목사님이 서로를 전혀 모르는데 두 교회의 공통적인 교회 표어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였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다른 교회에서도 그런 표어를 읽고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나도 표어로 삼지는 않았으나 나 역시 은퇴하기 전 우리 교회도 앞으로 5 년간 교육에 투자하자며 외치던 시점이다.
부흥회를 다녀온 바로 그 주일 저녁 몇 목사님들과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나눴던 대화의 주제가 다음의 세대를 위한 걱정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잘알고 있는 그대로 현재 이민 사회는 미국이나 캐나다 할 것 없이 이민이 줄어지고 있다. 이민이 들어와야 기존 교회가 성장도 하고 부흥도 하는데 오히려 역이민이 늘어나는 상태에서 이민 1세대는 점점 사그러지고 있다. 그렇게 애써 교회당도 건축하고 좌석도 늘이곤 했지만 이제는 자리를 채우는 일마저 힘들고 자연 교회 예산도 긴축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요원해졌고 살아남기 위해 예산을 줄이고 힘들여 건축했던 예배당을 매각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렇게 이민 1 세대는 사라지는데, 1 세는 그렇게 된다 해도 그 뒤를 이을 2 세들은 어찌 될 것인가? 마냥 교회를 떠나도록 방치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요원해졌고 살아남기 위해 예산을 줄이고 힘들여 건축했던 예배당을 매각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렇게 이민 1 세대는 사라지는데, 1 세는 그렇게 된다 해도 그 뒤를 이을 2 세들은 어찌 될 것인가? 마냥 교회를 떠나도록 방치할 것인가?
진정 목회자들로서는 심히 걱정되는 문제가 바로 다음 세대가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의 시대는 지나간다 해도 이민 사회만 아니라 한국 교회도 그렇고 세계 교회가 다 걱정스러운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민이 안 들어오는 것도 그렇지만 한국 교회도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을 보면 걱정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우리는 유럽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현실에 개탄을 하면서 한국 교회를 보라고 했는데, 이제는 우리 스스로 한국 교회를 걱정할 때가 온 것이다.
영국 교회를 방문했던 한 목회자가 늙은이 몇 명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교회를 개탄하면서 어떻게 영국 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더니 세상이 변하는데 교회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 교회도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는가? 세상이 그렇게도 변하는데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민 사회나 한국의 변화를 보라. 역이민이 늘어나는 지금 그리고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는 이 시점, 한국은 진보적인 정치가 신학자들이 설치고 심지어 종북주의자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앞으로 교회는 온전히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공산당에 의해 교회가 순교의 피를 뿌렸는데 그 피의 색깔이 점점 퇴색되고 추종하는 목회자도 있으니. 교회는 점점 늙어가면서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더 이상 들어올 생각도 않는다. 앞의 두 교회를 보면서 그리고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진짜 다급하기는 다급하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한국 교회도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는가? 세상이 그렇게도 변하는데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민 사회나 한국의 변화를 보라. 역이민이 늘어나는 지금 그리고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는 이 시점, 한국은 진보적인 정치가 신학자들이 설치고 심지어 종북주의자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앞으로 교회는 온전히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공산당에 의해 교회가 순교의 피를 뿌렸는데 그 피의 색깔이 점점 퇴색되고 추종하는 목회자도 있으니. 교회는 점점 늙어가면서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더 이상 들어올 생각도 않는다. 앞의 두 교회를 보면서 그리고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진짜 다급하기는 다급하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 목사님들에게 물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어떤 프로그램이나 준비된 계획이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그럼 어쩔 것인가? 마음은 급한데 뭔가 따라주지 않는 게 더 걱정이다.
우리 함께 울고 걱정해야 할 것이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는 이제 사그러지는 세대지만 우리의 2 세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교회가 젊은이로 가득 찬 교회를 그리면서.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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