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내게 참으로 귀한 시간을 마련해준다.
전혀 다른 삶 속에 풍덩 빠져 자맥질함으로써 잠들었던 오감이 깨어나고 미지근하던 체온이 올라가며 둔중하던 심장은 빠르게 고동친다. 미지의 세계에서 낯설고도 우발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크고 작은 가슴 떨림은 그런 의미에서 말 못할 희열이다.
몇 번을 미루고 벼르다가 떠난 여행이었다. 미국 동북부에 걸쳐있는 몇 개의 주를 돌아오는 여정에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를 향하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술렁임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H.D. 소로의 영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지역을 여행하면 꼭 들러보리라 마음 먹고 있던 월든 호수. 자연을 통해 세상과 인생을 관조하게 된다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의 책 <월든>을 만났다. 소로 스스로 자신을 ‘자연관찰자’라 불렀듯이 매일 달라지는 호수의 물빛과 하늘의 변화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들으며 소박하게 꾸려가던 삶의 원형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만일 내가 젊어서 그 책을 읽었더라도 뇌리에 이처럼 깊게 새겨졌을까.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하여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25년 동안 30여 권의 일기를 썼고, 강연이나 글을 쓸 때 자신의 일기에서 자료를 얻었다고 했다. 나 역시 대부분 글의 소재를 일기에서 얻고 있다는 그 작은 유사함만으로도 그에게 갑작스러운 친근감을 느꼈고, 아주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던 작가와 공유하는 ‘어떤 것’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콩코드에 다가가며, 호숫가에 두 평 남짓한 통나무 오두막을 짓고 자연친화적 삶을 실천한 <월든> 속의 그를 상상 속에 한껏 부풀려서 그려보았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호숫가 숲길을 걷고 싶었다. 160여 년 전에 그가 심었을 호두나무와 소나무들의 안부를 묻고 싶고 고요 속에 즐겨 들었다는 티티새의 노랫소리도 들어보고 싶었다. 
문명을 잠시 내려놓고 육체 노동을 이끌어주던 그의 정직한 두 손을, 더 없이 간소한 생활 속에서도 넉넉하던 그의 가슴과 숨결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입으로는 소박한 삶을 동경한다 하면서도 막상 거추장스러운 겉옷 하나 벗어놓지 못하고 사는 내 삶의 모습이 추레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월든>을 읽고 이곳 호숫가를 찾았다는 법정스님 생각이 났다. 소로의 삶을 먼발치에서라도 마주치고 싶다는 갈망에 스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콩코드 박물관에는 시대를 함께한 에머슨 시인과 작가 호손이, 육신을 버린 영혼만으로도 우정을 지킬 수 있음을 과시하듯 소로 곁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당대의 콩코드를 주름잡던 그들의 입김이 구석구석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소로를 보러 갔다가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만나고 나니 행운의 호위를 받기나 하는 것처럼 흐뭇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큰 바위의 얼굴>과 <주홍글씨>로 잘 알려진 호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고독 속에 살다간 호손의 생애를 염두에 둔 탓에 내게만 그리 보였던 것일까. 에머슨이 냉혹해 보인 것 또한 소로의 탁월함은 인정하면서도 칭찬을 아끼던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의구심과, 영적인 스승이면서도 제자인 소로와 묘한 경쟁 관계였다는 이유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개입한 나의 선입견 탓이었으리라. 
이번 여행 역시 내게 많은 사색거리를 안겨주었다. 여행은 사람이든 풍경이든 낯선 것들과의 만남 이외에도 그 ‘떠남’과 ‘돌아옴’ 사이에 방황을 통한 사색이 있어 소중할 것이다. 길들여져 익숙해진 곳에서는 건성으로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라는 낯선 시선을 택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것들을 자신만의 글이나 사진으로 간직하려 드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길 떠남’이란 몸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함께 떠나는 것이다. 길 위에서 영혼의 떨림을 경험한 후 작은 흔적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나 역시 글의 힘에 기대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데도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작은 손가방 하나는 늘 곁에 챙겨둔다. 여행은 내게 무엇일까. 익숙함이 그리워 돌아온 이곳을, 낯섦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이 아닐까.

< 김영수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