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사면이 미끄러운 투명한 상자 속에 물을 채워 그 속에 실험 쥐를 넣어 물 속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시간을 쟀습니다. 결과는 17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 실험과 똑같이 실험 쥐를 물 속에 넣고 기다리다가 실험 쥐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기 직전 이 쥐를 물 속에서 건져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쥐를 잘 먹여주고 잘 재우고 놀아주고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 그 쥐를 다시 물 속에 집어 넣고 얼마나 버티는지 시간을 재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쥐가 물 속에서 72시간을 죽지 않고 견뎌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가 새삼 알게 되는 사실은 ‘기대감’의 위력입니다. 아무런 기대감이 없는 첫 번째 실험 쥐는 물 속에서 17분밖에 견디지 못했지만 한 번 구원의 손길을 체험한 두 번째 쥐는 숨이 넘어가는 죽음의 순간마다 이번에도 누군가 나를 다시 건져주겠지 라는 기대감에 72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대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 줍니다.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노인 홈에 누워 죽을 날만을 기다리시는 더 이상 내 인생에 아무런 기대가 없으신 어르신들도 자녀들이 주말에 찾아온다는 소식에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우리는 쉽게 목격합니다.
그런데 기대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망입니다.
기대는 short-term의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소망은 long-term의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동반하지만 소망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기대는 또 다른 기대를 품게 하는 갈급함이 있지만 소망에는 영원한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럼 기대와 소망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로 ‘방향성’에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어떠한 사람은 extreme sports가 내 말초신경을 자극해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일의 성공 또는 성취감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 해서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해서 자녀에 내 모든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성(opposite sex)의 삶이 나를 만족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성전환 수술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소망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내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의 기대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입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고 지금도 여섯 번째 남자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사는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 찾아오셔서 그녀의 기대를 소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 박대웅 목사 - 토론토 새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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