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세력 겹침 2002년과 닮아

● COREA 2012. 11. 4. 12:57 Posted by SisaHan
2012 단일화 셈법, 과거 연대사례와 비교하니…
지지세력 겹침 2002년과 닮아

2012년 12월1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3파전인지 2파전인지, 2파전이라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상대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인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인지 결정되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선거 구도가 짜이지 않은 것이다. 

87~2002년 3번 연대 시도 두번 성공, 간발의 승리
올 대선은 무당파 결집 - 유권자 단일화 열망 강해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연합정치, 바꿔 말하면 후보 단일화는 2012년 대통령 선거의 마지막 변수이자,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두 후보의 단일화를 새누리당은 ‘야합’이라거나, “정권을 잡으면 친문-친안 권력갈등으로 국정이 파탄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 박근혜-안철수 양자대결 수치가 엇비슷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들이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단일화만 하면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 것일까?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단일화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1987~2002년 3번의 연대 시도
정권교체과정 만만찮아

대선 후보 단일화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현상이다. 후보 개인은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일 수 있지만, 선거 과정 전체로 보면 가급적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세력이 집권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정치적 발명품이다. 결선투표 제도가 있었다면 후보 단일화는 없었을 것이다. 해외 선진국 정치를 공부한 정치학자들이 우리나라 대선 후보 단일화에 대해 이론적 설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동안 의미있는 후보 단일화가 주로 현재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세력을 중심으로 추진된 이유는 분단과 군사독재에서 비롯된 보수세력 절대 우위의 정치 지형 때문이다. 보수세력 우위의 정치 지형은 1988년 총선에서 위기를 맞았지만, 1990년 3당 합당으로 다시 굳어졌다. 보수-영남-재벌-조중동이 결합한 ‘기득권 카르텔’은 지금도 사실상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후보 단일화 및 연대 시도는 세차례 있었다. 1987년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였다. 1987년엔 실패했고, 1997년과 2002년엔 성공했다. 단일화 실패는 패배로, 성공은 집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1987년의 사례는 지역 기반을 달리하는 두 정치인의 분열이 민주개혁 세력 전체를 양분시킨 경우다. 대중적 영향력이 컸던 김영삼·김대중은 6월 항쟁에 참여해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갈라섰다. 김대중은 11월12일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의 길을 열었다. 12월16일 선거일 직전까지 재야 원로들이 상도동과 동교동을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압박했지만 두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 결과는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였다. 
1997년 ‘대선 4수’에 나선 김대중은 1년 이상 공을 들인 끝에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고 김대중-김종필(디제이피) 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11월3일 서명했다. 지역 기반과 이념이 다른 이질 세력이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한 일대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디제이피 연합이 성공적인 정치 기획이었는지에 대해 이견을 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인제의 출마가 없었다면, 그리고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김대중이 이길 수 있었을까? 선거 결과는 김대중 40.27%, 이회창 38.74%, 이인제 19.20%였다. 1.5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것이다. 

문쪽, 후보등록 전 합의 원하고
안쪽, TV토론회 뒤 결정 선호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달으면 투표율 떨어져 박 당선 가능성

2002년은 민주개혁 세력의 대선 후보가 재벌 오너인 제3후보와 손을 잡은 특이한 경우다. 당시 정몽준은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발판으로 새로운 정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민주개혁 세력 후보와 무당파 제3후보의 단일화가 성공한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정몽준이 ‘여론조사 단일화’에 동의한 이유는 노무현에 비해 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단일화는 후보등록(11월27일) 이틀을 앞두고 25일 새벽 타결됐다. 정몽준은 투표 전날 밤 지지를 철회했지만, 12월19일 선거 결과는 노무현 48.9%, 이회창 46.6%였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구도는 과거 세차례 중에서 2002년의 경우와 가장 흡사하다. 첫째,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위상이 기존 양당 구조와 정치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이용해 ‘무당파’의 지지를 결집시켰다는 점에서 2002년 정몽준 후보와 일치한다. 둘째, 새누리당(한나라당) 집권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셋째, 따라서 결과적으로 지지 세력이 상당 부분 겹친다. 
다른 점도 있다. 두 사람의 정책 노선은 정치를 제외하고 경제, 복지, 외교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치한다. 따라서 단일화가 이뤄져도 정책 연대에 의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실 단일화의 효과는 두 후보가 다를수록 커지게 되어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경우엔 정책 연대에 의한 시너지가 확실히 있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성공했다고 평가받으려면 반드시 둘 중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해야 한다. ‘단일화의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첫째, 공동정부 구성에 성공해야 한다. 공동의 가치와 정책노선을 공표하고, 국무총리와 내각 인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합의해야 한다.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정권을 잡는 ‘공동집권’이어야 지지자 이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사람이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도 ‘안철수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지, ‘안철수 총리’나 ‘안철수 대표’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정부 구성은 말만큼 쉽지가 않다. 
둘째, 안철수 후보가 ‘정당’에 대한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 민주당에 입당할 것인지,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 민주당과 통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안철수 캠프 안에서도 무소속 대통령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단일화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단일화의 절차’다. 이 부분은 선거 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1월25~26일이 후보등록일이다. 문재인 후보 쪽은 후보등록 이전 경선에 의한 단일화를 요구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 쪽은 답이 없다. 하지만 내부에선 후보등록 이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법정 토론회를 보면서 여론조사나 담판에 의해 단일화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법정 토론회는 12월4일, 10일, 16일로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자칫하면 단일화가 ‘치킨게임’ 양상으로 갈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버티다가 12월19일 투표일 직전에 ‘마음 약한’ 한 사람이 사퇴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투표율은 떨어지고, 고정표가 많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02년엔 대선 투표율이 70.8%, 2007년엔 63.0%였다. 
투표용지 변수도 있다. 후보등록 이후 단일화가 이뤄지면 사퇴한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들어간다. 그 뒤 12월 초 시군구별로 투표용지가 인쇄되기 전에 사퇴하는 후보는 기표란에 ‘사퇴’라고 인쇄한다. 투표용지 인쇄 이후에 사퇴하면 투표소에 안내문을 게시하는 조처밖에 취할 수 없다.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가 투표 사흘 전에 사퇴했는데, 무효표가 18만3000표 이상 나왔다. 상당수가 사퇴한 심상정 후보를 찍은 것이다. 선거인단 규모가 비슷한 서울시에서는 무효표가 2만8000여표에 불과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의 단일화 열망은 뜨겁지만, 이처럼 내용과 절차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11월 중순까지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영향을 미칠 가장 큰 변수는 호남 민심이다. 안 후보 캠프에는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들이 꽤 많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단일화에 정치적 목숨을 걸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호남 민심은 대체로 ‘후보는 안철수, 당은 민주당’이다. 호남은 안 후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확장 가능성 때문에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 안 후보가 단일화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순간 호남 지지율은 폭락한다. 따라서 단일화는 어떻게든 이뤄질 것이다.”
 
< 성한용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