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마침으로써 18대 대선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전통적인 여야 양자대결로 짜인 구도 속에서 두 후보는 앞으로 25일 가까운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불꽃튀는 경쟁을 벌일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국가와 사회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을 탐색하고 이를 실현할 적임자를 찾는 과정이다. 흥미롭게도 올해 대선에서 각 후보들이 내건 시대정신은 엇비슷하다. 복지, 평화, 공존, 소통, 화해, 통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가치들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릴 때가 됐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결과일 터이다. 각 후보들의 정책적 화두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건설, 양극화 해소, 한반도 평화 등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겉보기의 유사성과 달리 본질적 차이는 뚜렷하다. 똑같이 소통을 말하지만 ‘진짜 소통’도 있고 ‘가짜 소통’도 있다. ‘말뿐인 복지’, ‘진심 없는 화해’, ‘구호에 그치는 평화’도 있을 것이다. 대선은 이런 차이들을 유권자들이 찾아내는 과정이다. 경제민주화 문제만 하더라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불발 과정만 봐도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시대정신의 구현은 단순히 공약으로 표현되는 말과 글의 차원을 넘어선다. 후보의 삶의 발자취, 인격과 품성, 철학과 이념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체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후보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과 세력들의 면면에서 오히려 시대정신을 추진할 의지가 선명하게 읽히기도 한다. 각 후보는 물론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에 대한 정밀한 검증과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대선에서 또 하나 빠뜨리지 않고 확인해야 할 과제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다. 한때 국제적인 찬탄의 대상이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 새로 들어서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꽃을 다시 활짝 피울 막중한 책임을 마주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이는 다른 시대정신에 선행하는 요소일 것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뭐래도 ‘정권 교체’냐 ‘정권 재창출’이냐를 결정하는 정치행사다. 단순히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다툼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계승과 단절을 결정짓는 분기점이다.
여야 기성 정치권은 그동안 ‘무소속 후보 돌풍’에 맞서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정당정치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 단어는 바로 책임이다. 유권자들이 ‘정권 심판론’의 손을 들어줄지, 아니면 ‘정권 재창출론’의 손을 들어줄지는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의 이런 성격 자체를 감추고 호도하는 자세는 떳떳하지 못하다.
올해 대선은 새로운 정치 실현의 첫 단추를 여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정치 쇄신, 정당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절실해졌다.
각 후보는 정치혁신의 미래 청사진을 펼쳐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말로는 새로운 정치를 말하면서 흑색선전, 색깔론 등 네거티브에만 의존해서는 새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올해 대선은 ‘51 대 49의 승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박빙의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곳곳에 산재한 변수들이 어떻게 대선판을 흔들지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두 후보가 혼돈의 와중에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펼쳐 멋진 승부를 가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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