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녀를 본 지 어언 일 년이 지났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말 할 수 없는 기쁨아래 곧 할머니가 된다는 황당함도 스멀거렸다. 오십 후반의 첫 손자는 그렇게 이른 편도 아니었건만 초가을 어디쯤으로 착각하고 있던 내 인생의 계절이 갑자기 겨울로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삼십 여년 만에 집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던 날, 그 쏴아 했던 감정은 나도 모르게 사라지고 할머니란 소리가 술술 저절로 나왔다. 정겨운 호칭이 하나 더 주어졌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의 탄생으로 썰렁했던 집안에 훈기가 돌고 메말랐던 감성이 봄비 맞은 들녘처럼 촉촉해졌다. 나날이 달라지는 아이의 재롱으로 활력이 생겼고 팍팍하던 삶에 윤기가 돌았다. 그렇게 나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던 녀석이 지금은 장거리 출타 중이다.
대구의 친정에 다니러간 며느리에게서 종종 아이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이 온다. 비록 단편적이긴 하나 아이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을 메우기엔 안성맞춤이다. 오늘도 새로 보내온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그 속으로 빠져들다가 신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녀 서현이가 홀 한 가운데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비틀 베틀 걷고 있었다. 젖먹이를 안고 빙 둘러 앉아있던 아이엄마들의 시선이 모두 서현에게 쏠렸다. 어떤 아이엄마는 부러운 듯, ‘저기, 언니 걷는 것 좀 봐.’ 하는 음성이 들리기도 했다. 펼쳐진 상황이 상상되지 않아 아들에게 물었더니, 엄마와 함께하는 생후 6~7개월 반, 유아 조기교육실의 전경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한 돌짜리 서현이가 동생들 반에 침입하여 아장걸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된 상황이었다. 동영상을 몇 차례 더 돌려보며 이 기이한 현상을 관찰하다가 머리가 띵 해 옴을 느꼈다. 조기교육 열풍이 젖먹이들에게 까지 뻗쳐있음이 확연해서였다. 무한경쟁시대에 교육이 대세라지만 유아들의 성장발육까지도 교육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게 씁쓸했다.
한국의 영유아교육의 현주소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대에 맞는 할머니 역할을 하려면 현재 돌아가는 추세는 알아두어야 할 것도 같았다. 한 사이트에서 영유아교육의 적정 시기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육십프로가 넘는 응답자가 생후 6개월부터 12개월 전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또한 교육의 지표는 창의력과 신체발달, 인성에 역점을 두었고 감성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오감을 골고루 자극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하였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모두 바람직한 이론을 바탕한 목표설정이었으나 정형화된 방법이 마음에 걸렸다. 교육의 시기도 태아교육을 생각하면 이르다고 볼 수 없지만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시기를 그렇게 잡는다는 게 의아했다.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속담을 실천시키는 시발점으로 보아야 할 지 아리송하기까지 했다. 꼭 전문교육기관을 거쳐야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엄마들의 사고가 위험스럽고 틀에 박힌 시스템 안에서 얼마마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오늘따라 할머니와 함께 한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어머니의 매운 회초리를 피해 할머니 치마 속으로 숨어들던 기억이며 올망졸망한 형제들 입에 박하사탕 하나씩 물려놓고 옛날 옛적에……. 로 시작한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어린 소견에도 참 재미있었다. 충렬왕전, 박 혁거세전, 홍길동전 등등 할머니의 이야기엔 오늘날처럼 인성, 감성, 창의력을 강조하지 않아도 그 속에 모두 녹아있었다. 특별히 오감을 자극 시키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아도 산으로 들로 뛰고 놀면서 자연히 해결되었던 그 시절을 내 손녀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시대를 거스르는 할머니가 되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
나의 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되기 위해 이야기 창고부터 불려야겠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 임순숙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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