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과 한파 속에서 새해 첫날이 밝았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자 새로운 5년의 출발이다. 선거의 승패를 뒤로하고 이제는 각자 대한민국 공동체의 안녕과 전진을 위해 스스로 할 바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저질러온 난장의 결과다. 민주주의의 보루가 돼야 할 검찰 등 공권력과 언론이 권력의 주구로 동원됨에 따라 민주주의와 인권은 퇴행을 거듭했다. 대기업·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은 1 대 99의 사회를 고착시켜 서민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지난 세밑에만 해도, 삶의 현장과 노동의 현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회의 외면을 견디다 못해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목숨을 끊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개발이란 미명 아래 파헤쳐진 산하는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려봐도 상황이 엄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지속되는 체제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로켓을 개발하는 등 대결적 자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퇴행적인 극우정권이 등장해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아시아로의 귀환을 내세운 미국과 이 지역 패권을 노리는 중국 사이의 대결 역시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다.

어질러진 난장을 정리하고 다시 전진하기 위해선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물질 위주의 패러다임을 생명·생태 중심으로 바꾸고, 승자독식사회에서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는 공존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고 한 단계 끌어올리려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역시 절실하다. 대외관계에선 북한문제 해결에 우리의 주도적 역량을 강화해 한반도가 동북아 갈등의 진원지가 아니라 평화의 촉진자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두 간단치 않은 과제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국민 모두가 혼연일체가 된다면 극복 못할 어려움도, 넘지 못할 산도 없다. 문제는 선거 결과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가 이념과 세대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는 점이다. 이렇게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내지 않고선 한 치 앞으로도 전진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그들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을 포용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펴야 할 까닭이다.
대통합의 바탕은 이미 마련돼 있다. 박 당선인과 문재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복지·평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 당선인은 심지어 시대교체를 슬로건으로 삼았다. 그만큼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존의 시대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적 열망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박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만이라도 진정성을 갖고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벌써 현실성을 들먹이며 공약 폐기를 주장하는 세력에 귀기울이거나 극우인사를 등용해 통합을 소망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새 정권이 경제민주화·복지·평화·대통합 등 공약을 제대로 구현하도록 추동하고 감시하는 일은 이제 야권의 책무가 됐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국민의 변화 욕구를 제대로 수렴해내지 못함으로써 또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환골탈태해야 야권에도 희망의 미래가 열릴 수 있다. 국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국민의 구체적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주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정치권에만 지울 수는 없다. 지난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놀라운 열정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것으로 알려졌던 20~30대는 안철수 현상을 통해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고, 투표를 통해 그 갈망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열망이 강렬했기에 좌절의 아픔도 그만큼 깊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진 낙엽은 뿌리를 튼튼히 하는 거름이 된다. 좌절의 아픔을 새 정치에 대한 더 큰 책임감으로 승화시킨다면 아픔의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터 오를 수 있다.

87년 6월항쟁 이후에도 민주진영은 분열함으로써 군부정권의 후예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뼈아픈 패배를 겪었었다. 당시 국민들은 그 아픔과 좌절을 딛고 민주언론 <한겨레>를 탄생시켰다. 올해 창간 25돌을 맞는 <한겨레>가 그동안 만들어주시고 키워주신 국민들의 뜻에 부합하는 언론의 길을 제대로 걸어왔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이제 부족한 점을 반성하면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민주주의의 보루인 비판언론의 책무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공존·상생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데도 힘을 보탤 것이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믿음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