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도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미국인들의 총기소유에 대한 관대함이다. 한발 더 나아가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총기소유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떠받들고 있다.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인명사고는 그야말로 일상다반사다. 몇 명 정도 사망으로는 전국 뉴스에서 짧게 다뤄지기도 어렵다. 브래디 캠페인이란 단체에서 작성한 2005년 이후 3명 이상 사상자를 낸 총기사고 목록은 장장 64쪽에 달할 정도다.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이제는 다들 무감각해진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애리조나 투손에서 일어난 국회의원 기퍼즈 저격사건과 2012년 7월 콜로라도 오로라의 심야극장 총기난사사건은 거의 몇주간 미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대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총기규제 이야기는 잠시 거론되다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사건이 한번만 발생했어도 강력한 총기규제법안이 즉각 입안되는 등 난리가 났을 텐데 외국인으로서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지난해 12월 코네티컷의 샌디훅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6~7살의 어린 영혼 20명과 어른 8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후 잠시 자숙하는 듯하던 미국총기협회(NRA)는 기자회견을 통해 “총을 든 악인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착한 사람들이 총을 들어야 한다”며 미국의 모든 학교에 총을 든 경비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궤변을 일삼고 있다. 또 오히려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나서 뉴스가 되면 될수록 총기와 총알은 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총기규제가 발효되기 전에 미리 총기를 구입해두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이다.

총기규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총기소유 옹호론자들은 “총기소유는 수정헌법 제2조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며 강력히 반발한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내 지인들은 집안 대대로 총을 물려받아 왔으며 사냥이나 스포츠용으로, 그리고 호신용으로 총기소유가 일반화된 미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총기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총이 없는 가정보다 더 위험하다. 의도치 않게 그 총기가 자녀나 제3자의 손에 들어가면서 우발적인 사고가 나거나 자살의 도구로 이용되곤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얼마 전 뉴욕에서는 8살짜리 초등학생이 몰래 엄마의 권총을 가지고 학교에 등교해서 난리가 난 일도 있다.
더구나 수십발 연속발사가 가능한 기관총 등의 첨단무기가 대량으로 판매되면서 총기사고의 인명피해 규모도 더 확대되고 있다. 도대체 호신용으로, 사냥용으로 왜 자동기관총이 필요할까. 10연발 이상의 탄창이 왜 필요할까. 그리고 모두가 호신용으로 총을 소지해야 한다면 우리는 학교에서도, 극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디에서나 모두 총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안전하기는커녕 더 위험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려고 요즘 미국의 교사들은 총기 사용 및 대응 방법을 익히는 모의군사훈련을 받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건 거의 전시상황이다.

다행히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총기규제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157가지 반자동 총기와 10발 이상 대용량 탄창을 규제하는 법안을 막 발의했다.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에 따르면 샌디훅초등학교의 비극 이후 겨우 한달 반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1300명이 된다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미국이 이런 비극의 악순환을 끝내기를 기대한다. 

< 임정욱 - 다음 커뮤니케이션 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