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일을 가족과 보내려고 멀리 캘거리에 사는 아들아이가 집에 왔다. 날이 밝으니 아이가 차고 깊숙이 들어있던 낚싯대를 끄집어 내며 낚시를 간다고 준비를 했다. “아니 이 겨울에 오자마자 웬 낚시?” 하면서 남편과 서로 얼굴을 쳐다 본다. 떨어져 있어 잊고 있던 아들의 모습이 확 다가온다. 어려서부터 아들아이는 항상 무언가 한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고 큰 열정을 쏟아 붓곤 했다. 그 관심거리는 나이에 맞게 변하기도 하지만 한번 좋아지면 몇 년씩 그 일에 매달린다.
초등학교 3, 4 학년쯤, 아이가 한창 스키타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스키장 근처에 있는 시골에 살고 있었다. 아이는 패스를 사가지고 일주일에 닷새를 밤마다 스키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눈동자까지 아파오는 추위 속에서 스키를 타곤했다. 겨울이 지나고 3월 봄방학이 되었다. 그 날은 비가 너무 쏟아져 결국 사람들을 산 위로 나르는 스키리프트가 다 멈추고 말았고,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해 건물 안에 모여있었다. 헌데, 어디를 둘러봐도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애타서 아이를 찾는 엄마가 안타까워 주변의 사람들이 유리창에 얼굴을 붙이고 창 넘어로 아이를 찾는 일에 동참했다. 그때 높은 산 봉우리 위에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 작은 점은 천천히 아래로 움직이고, 곧 빨간 쟈켓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줄줄내리는 비로 빙판처럼 된 산을 열심히 내려오더니, 중간에서는 아예 스키를 벗어 들고 걸어 내려왔다. 빈 산을 향해 눈을 고정시키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해 아이는 과학시간 숙제인, 유명한 발명품으로 ‘스키’를 택했고, 영어시간에 발표했던 4편의 시(詩)도 ‘스키’를 중심으로 썼고, 불어 시간의 작문도 ‘스키장’을 주제로 삼았다. 이 정도가 되면 학교에서는 물론 이웃 사람 모두가 아들아이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 알게 되고, 스키장에 가려면 우리 아들부터 부른다. 이 못 말리는 아이를 엄마와 이모들은 ‘한 사랑’ 이라 별명을 붙여 주었다. 타고 난 성격이 호기심이 많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묻고 사는 아들은 언제 봐도 신나게 싱글벙글 살아간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엄마는 늘 엉뚱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아들이 불안하게만 보였다. 더구나 시골에서 자라서 훗날 도시의 대학에도 가고 우리가 기대하는 직종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려면, 아이가 더 큰 야망을 갖고 그것을 준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서는 늘 ‘현재의 행복’ 과 ‘미래의 성공’ 이 티격 태격 했다.
그 아들 ‘한 사랑’이도 이제는 성인이 되어 지난 여름에는 한 여인의 남편이 되었다. 어린 꼬마가 가지고 있는 어이없는 열성을 놀리며 붙여주었던 그의 별명이 이제는 어릴 적 관심사를 넘어, 그의 삶에 들어선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일컫는 이름도 되었다. 아들은 10학년에 만난 아가씨와 13년이란 오랜 세월을 보내고 결혼을 하였다. 그 사이 그들은 학우였고, 친구였고, 연인들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주위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그는 이미 그것들을 사랑하는 훈련의 연륜이 깊은 듯하다.
한 세대를 먼저 산 엄마도, 가만히 지켜보니 늘 삶에 만족해 보이는 아이가 은근히 부러워진다. 그 타고난 열정이야 쉽게 흉내 낼 수 없겠지만, 아이가 하는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에 마음을 쏟아보고 싶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크고 작은 스크린을 통해서 하루 종일 나에게로 전해진다. 나는 지인들과 숲을 걷는 일을 즐기는데, 마음은 남미의 정글이나 동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들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서 성급해진다. ‘한 사랑’식으로 하면 나는 매일 내가 갈 수 있는 숲들을 모두 찾아내어 비에 젖은 숲도 걷고, 안개 낀 숲도 곳곳을 둘러보면서 숲의 다른 모습들을 체험하고 사랑하게 되어 그 곳을 나의 안식처로 만들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괜찮은 새해의 바램이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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