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은 보고를 받을 때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외면할 때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보고하는 사람은 애가 탄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다시 부르면 합격이고, 다시 부르지 않으면 잘린 것이다.
사람을 쓰는 방식도 독특하다. 몇 사람을 몰래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능력이 있고 믿음이 간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기용한다. 개인적인 인연은 따지지 않는다. 당사자가 이유를 물으면 “당신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발탁된 사람은 감격에 겨워 충성을 다하게 되어 있다.
그는 이런 용인술을 청와대 시절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1963년 그는 11살이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퍼스트레이디’와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운명의 짐을 짊어진 1974년엔 22살이었다. 10대와 20대의 기억과 감수성은 평생을 지배한다. 박근혜 당선인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라 장관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다. 장관들은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 각 부 내부 인사권은 장관에게 준다. 재임 기간도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최근 당선인 주변과 새누리당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박정희 시절 그랬듯이 ‘장관의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박정희 이후 대통령들이 단기간에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을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키워 놓았다는 친절한 설명도 붙는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박정희 시절 장관이 막강했던 이유는 입법부의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지배했다. 법률이 필요하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국회는 통법부였다. 행정부 절대우위의 구조에서 장관의 힘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과거 장관의 재량이었던 영역은 대개 법률의 영역이다. 장관에게 필요한 능력은 입법부, 특히 야당에 대한 설득력이다. 대통령도 대국민, 대국회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커진 것은 여러 부에 걸치는 복잡한 현안이 늘어나면서 정책 조정 기능이 중요해진 탓이다. 청와대를 약화시키려면 총리실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행정부 절대우위의 구조’, ‘장관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과 경험만으로 국정을 밀고 가려 하면 파멸할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방식은 2010년대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한다. 다행히 그는 정치인으로서 아버지보다 우월하다. 1998년 이후 정치와 정책에서 수많은 좌절과 성취를 겪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여성이다. 여성적 리더십은 경청과 공감, 설득을 본질로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박정희 리더십과 박근혜 리더십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걱정이다.

과거회귀 현상은 야당에도 나타나고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한 민주통합당에서는 최근 ‘김대중 시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꿈틀거린다. 주말 워크숍에서 몇몇 참석자들은 “총재 같은 대표를 선출하고 최고위원들을 없애는 단일지도체제”, “대표와 당 5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부 체제”를 제안했다. 확고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일리가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정치적 지분을 가진 몇몇 세력의 과점을 뒷받침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에는 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리더가 없는데 느닷없이 독점체제를 도입하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워크숍에서 많은 참석자들은 모바일 투표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현장 투표에서 발생했던 조직 동원과 돈봉투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쩌자는 것일까?
과거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의 해법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창조적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다.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