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은 언제나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념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의지의 영역이라면 신앙은 우러러 바라보는 하나님 대상의 영역입니다. 이 두 부분을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의를 내세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의 신념을 마치 거듭난 신앙으로 착각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오래 믿었던 사람일수록 말입니다. 그 한 예로서 예수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의를 내세웠기에 책망을 받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와 삶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죄인 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저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의를 얻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서 긍정적 사고, 적극적 사고가 유행합니다.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인본주의 사고의 산물입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초기 사역에서 시몬을 부르는 장면을 살펴볼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그물 씻는 것을 보시고 청하여 그의 배에 오르사 무리를 가르치시고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몬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밤새도록 자신의 경험과 모든 것을 동원하여 던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물을 던지면 반드시 적든 많든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던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번 두 번 안 잡혀도 계속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다릅니다. 자신의 신념인 생각의 영역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먼저는, 고기를 잡는 일은 밤에 하여야 하는 것인데 낮에 그물을 던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깊은데 가서 던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그 결과 두 배에 가득 차도록 잡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말은 없고 예수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고백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인의 행복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유인즉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의 영역인 신앙이 자신의 신념의 기둥을 더욱더 공고하게 붙들어 주는 것이기에 그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모든 상황과 사건 앞에서도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고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념은 사람의 나이와 환경에 따라서 변할 수 있으나 신앙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기에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안상호 목사 - 동산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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