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서 정부조직개편 불발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 드러내
수석 비서관들도 긴장…민주 “취임 열흘 안돼 국회 고립시키려해”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목소리는 시종일관 높은 톤을 유지했고, 때론 부르르 떨리는 느낌마저 전달했다. 내용 역시 국민을 설득하려는 담화라기보다, 꼬일 대로 꼬인 출범 초반 국정상황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격문에 가까웠다. 기자회견장 옆으로 나란히 배석한 수석비서관들도 입술을 꽉 다문 채 상기된 표정이었다.
박 대통령은 “산적한 현안과 국민의 삶을 챙겨야 할 이 시기에 저는 오늘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다”고 운을 뗐다. “여야 대표들과의 회동을 통해 발전적인 대화를 기대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큰 걱정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감 표명은 이뿐이었고, 이후 야당에 대한 강한 톤의 불만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안보위기와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금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로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고, 글로벌 경제위기와 서민경제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격한 감정마저 묻어났다. 외부 위기를 강조하며, 일사불란한 협조를 당부하는 패턴은 권위주의 시절 논리를 닮았다.
박 대통령의 이런 강경한 태도의 배경에는 담화문 발표 직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의를 표명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미래성장동력과 창조 경제를 위해 제가 삼고초려해 온 분인데 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의 ‘진심’을 믿어달라는 호소도 이어졌다. 욕심이 없고, 어떤 의도도 없으니 대통령의 선의를 이해하고 따라와 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미래창조과학부 업무와 관련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목적 이외에 어떠한 정치적 사심도 담겨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의 마음을 정치권과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미래창조과학부 업무와 관련해 정부조직법 원안 통과를 요구하는 데도 담화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경제를 새롭게 일으킬 성장 엔진의 가동이 늦어지고 있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기회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본 민주당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은 “취임한 지 열흘도 되지 않은 박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운영에서 국회를 고립시키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정 대변인은 이어 “박 대통령의 담화는 국회를 통법부로, 여당은 거수기, 야당은 거수기 보조자로 여기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매우 실망스럽다.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한다며 국회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권위주의 체제의 독재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매우 위험한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도 출범 초 박 대통령의 강경한 담화를 국민과 정치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아직 청와대에 남아 있는 전임 정부의 한 실무자는 “박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알겠는데, 표현이나 형식이 너무 거칠고 감정적이어서 갈등만 증폭되는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



문희상 "朴대통령,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

"상생정치 원칙에 어긋나…입법부 시녀화 시도"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해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무리 급하고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 해도 법률이 정한 원칙은, 정부조직 개편은 국회 논의를 거치고 국민 동의를 얻어야지 대통령의 촉구담화, 대야당 압박 일방주의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이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상생정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법권과 법률을 무시하는 대국회관, 대야당관으로 어떻게 새 정부가 국민행복을 이루겠느냐"면서 "입법부를 시녀화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또한 "과거 MB정부 때도 그렇지만 여야가 오랜 시간 (논의해) 끌어낸 합의를 청와대가 원안고수란 이름으로 압력을 가하고 여당은 직권상정, 야당은 단상점거하는 구태 정치를 또 하자는 말인가"라며 "어제 오후 2시 회동에 일방적으로 초청해 놓고 (그에 앞서) 대변인을 통해 원안고수를 주장하면 어쩌자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청와대 면담요청에 응해달라는 것은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다"면서 '이솝우화'와 장기에 비유, "여우가 두루미를 초청하고서 접시에 담긴 수프 먹으라는 격이고, 여야가 장기 두는데 훈수 두던 대통령이 장기판을 뒤엎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여야 상생정치를 위해 얼마든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밥 먹고 사진 찍는 자리에는 가지 않겠다"며 "국정파트너로 인정하고 어젠다를 놓고 상의할 수 있을 때 언제든 간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정 여야 상생정치, 민생정치를 바란다면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 달라"며 "원안고수라는 억지를 버리고 국회 합의안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해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