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호랑이 꼬리를 밟으라

● 칼럼 2013. 4. 6. 18:47 Posted by SisaHan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독도=다케시마에 대한 주권 주장을 일본이 단념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 결단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전망없는 주장을 계속해서 한-일 관계, 일본인과 한국인의 감정을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라는 이 주장은 한국 사람이 꺼낸 말이 아니다. 독도를 자기네 다께시마라고 억지 부리는 일본 땅에서, 일본사람이 한 말이다. 그 것도 일본 최고의 명문인 도쿄대학의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가 최근에 펴낸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책에서 당당히 주장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영유권을 갖는 대신 일본 어민들의 어업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일부 양보가 필요함을 지적했지만, 그의 해결책은 일본인들에게는 괘씸하고 배신감을 주기에 충분할 예민한 내용이다. 일본의 지성으로 불리는 하루키 교수는 또 일본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북방 4섬’에 대해서도 일본이 거짓말을 하고있다며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라고 일본정부를 꾸짖고 있다.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맞선 문제에, 특히 양측의 민족적 자존심이 걸려있고 극우세력의 목청도 확산되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일본의 ‘패퇴(敗退)’를 직언한 하루키 교수의 용기는 가상하기 그지없다. 가령 한국에서 그런 식의 ‘양심적일지언정’ 역발상인 주장이 나왔다면?…당장에 매국노라고 몰매를 맞고 ‘매장’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서울대 재직교수가 정치를 훈수한다고 심한 공격을 받고, 퇴임교수는 ‘희망버스’를 탔다는 사실 하나로 명예교수 선임대상에서 제외되는 현실, 쇠고기 협상을 제대로 하라고 지적한 PD수첩이 피소된 사례 등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주장을 한다해서 적대시하고 걸핏하면 ‘좌파’가 되는 흑백논리의 살벌함에서 양심적 직언은 자칫 목숨까지 걸어야 할 판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보다는 일본이 아직은 앞선 나라고 운신의 폭이 넓은 사회라고 해야할 것 같다. 도쿄 한인타운에서 험악하게 반한·혐한 시위를 벌이는 우익을 향해 “인종차별적 행위를 중단하라, 물러가라”고 용기있게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시위대가 나선 것을 봐도 그렇다. ‘한국·한국인을 비난말라’는 직설이 아닌 ‘인종차별적 행동을 말라’고 지적하는 점잖은 수준도 한 수 위다.
대중사회에서 군중심리에 휩쓸린 다중의 의사에 반한 주장과 입장은, 아무리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주장일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사표명과 행동에는 특단의 각오가 필요하다. 높은 학식과 도덕과 인격에 정의감을 지닌 ‘지성인’ 가운데서도 보통 용감해서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문제는 직언이 제지당하고 멈칫대는 곳은 어느 사회든 군중심리적인 다중의 편향이 거의 대부분 불행한 결말로 달려간다는 사실이다. 나치의 독일이 그랬고, 군국주의 일제가 그랬다. 잘못 가고있다는 경고의 목소리와 제동을 거는 직언이 묵살되고 침묵과 왜곡만이 강요될 때 파멸이 가까워지는 것은 수많은 역사가 보여주였다. 목숨을 걸고라도 바른 말을 하고 양심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많아질 때 그 사회가 맑고 건강했고, 또 그것은 당연하다. 조선왕조에서도 여론을 살펴 왕의 잘못에 대해 목숨을 걸고 직언했던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이 존중받을 때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이는 언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언로가 왜곡되거나 막혀있는 정치와 사회에는 언제나 불신이 싹트고 부정과 불의가 독버섯처럼 번진다. 언론이 중요한 이유다. 정부의 언론장악을 걱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감시하고 고발하는 시선이 없으면 자연히 방만으로 흐르게 된다. ‘땡전’이니 ‘나팔수’라는 말을 들으며 찬양일색이던 언론환경에서 구린내 나는 부정과 비리가 횡행한 것은 산 교훈이다. 그래서 권력과 다중의 압박을 견디며 위험을 무릅쓴 양심적 언론의 탐사정신과 직설보도는 너무 당연함에도, 요사이는 눈총을 받는 위험스럽고 ‘위대한 일’이 되어버렸다.
 
직언은 고통스럽고 때론 위험한 것이다. 옛 중국의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일신을 망친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 아비도 위태로운 법이다.” 주역(周易)은 아예 직언을 ‘호랑이 꼬리를 밟는 일’에 비유했다. 호랑이 꼬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꼬리를 내려 항문을 가리니 구리고 냄새나는 것의 덮개이며, 다른 하나는 치켜세워 맹수의 왕임을 보여 주는 용맹과 힘을 상징한다. 직언은 상사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 심지어 비리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과정에서 권위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니 호랑이 꼬리를 밞는 것처럼 대단히 위태로운 일이라는 뜻이다. 
최근의 인사실패를 두고 직언을 싫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적 행태를 꼬집는 말들이 터져나온다. 대간이 유명무실화하면서 세도정치를 낳고 결국 부정부패와 망국으로 흐른 조선왕조의 전철을 되새겨 볼 일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