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 “진정한 대화는 핵 억제력을 갖춘 단계에서야 있을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서는 “대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열릴 한국·미국과의 대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어 “(미국이) 대화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여론을 오도하려는 기만의 극치”라며 이렇게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북한 최고사령부는 이날 남한 정부에 보내는 ‘최후통첩장’에서 “남한 당국자들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 지금까지 감행한 모든 반공화국(반북한) 적대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전면 중지하겠다는 실천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은 17일 우리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단의 개성공단 방북 신청을 불허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오늘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10명의 개성공단 방문 신청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해 왔다”고 전하고 정부로서는 매우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고 밝혔다.



한-미 ‘대화’강조, 국면 전환되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순방 동안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지난해 12월12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뒤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N방송은 북한이 동해안에 배치한 무수단 미사일을 기립 상태에서 아래로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 특히 케리 장관이 이날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고 분명히 밝힘에 따라 북한이 계속 요구해온 북-미 직접 대화도 가능해졌다. 케리 장관은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제의한 대화에도 북한이 응할 것을 요구했다. 전날 박 대통령도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전날 미국 CNN방송에 나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게 “대화의 창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북한은 16일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 “진정한 대화는 핵 억제력을 갖춘 단계에서야 있을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국에 대해서는 “대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열릴 한국·미국과의 대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이 일단 거부했지만, 줄곧 요구해온 체제 보장을 위한 미국과의 대화, 경제협력을 위한 한국과의 대화가 일시에 재개될 기회가 주어진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도 이런 분위기 전환에 큰 힘을 실어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회담 뒤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도발 중단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래 오바마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며, 외교적 해결을 강조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4월 초부터 미국 정부가 보여주기 시작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핵심은 ‘북한의 위협·도발→위기 고조→대화’라는 패턴을 다시 허용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도 “지난 5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미니트맨3의 발사 실험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그 어떤 메시지보다도 강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케리 장관은 12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긴장 완화를 위해 몇 개의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밝혀, 탄도미사일 발사 연기가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이었음을 공식 확인했다.
 
북한은 최근 긴장 고조 국면에서 미국에 ‘전쟁이냐 대화냐’의 양자택일을 요구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다시 미국 주도의 유엔 제재가 추가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결정은 미국이 대북정책을 군사적 압박에서 외교로 전환하려는 시점에 북한 스스로 미국과의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결정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결국 한-미 양국은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압박’과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기존 ‘투 트랙 전략’의 업데이트로 압축된다. 
양측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추가 도발에 매우 분명한 어조로 경고했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미 상당히 위험한 한반도에 (위험을) 더 추가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확고한 대한 방위공약을 강조했다. 윤 장관도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 등 필요한 조치가 예상되지만, 그것 말고도 국제사회와 함께 훨씬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북한에 보낼 생각”이라고 거들었다. 
< 박병수·강태호·김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