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다시 ‘텐노 헤이카 반자이! (천황폐하 만세)’의 외침이 튀어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을 짓밟아 2천만명 이상을 살상한 ‘대일본제국’ 시절에 횡행했던, 당시의 피해국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폭압의 외침이었던 맹신적 호기의 군중합창-. 그 두려운 역사의 퇴물이 장막 뒤에서 다시금 변장한 얼굴을 비죽이 내밀고는 무대 위 확성기를 타고올라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4월28일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미군의 점령통치를 마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지 61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사 부정’으로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아베 신조 내각은 이날 일본 정치사상 처음으로 ‘주권회복·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이라는 희한한 행사를 열었다. “이날은 굴욕의 날”이라며 오키나와의 전 주민이 궐기해 반대하는 데도 콧방귀를 뀌듯 버젓이 성대한 식전을 자랑했다. 우익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천황폐하’를 모시고, 국회와 정부의 수장이 모두 모여 “자랑스런 일본” “강한 일본‘을 들먹이며 기세를 올렸고, 아베는 ”지금까지 걸어온 족적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수뇌들은 아키히토 천황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더니, 그 부부가 퇴장하려 하자 양 손을 치켜들고 입을 모아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다. 
태평양 전쟁 이후 사라졌던 이 장면은 최근 가속되고 있는 일본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급 전범의 손자인 아베가 집권한 이후 군대위안부 부정과 독도망언, 일제의 침략전쟁 부인, 그리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북한 핵위협을 빌미로 한 자위대 국방군화와 무장 강화 추진 등 일련의 ‘복고책략’이, 그동안 다수 국민들 사이에 터부시 돼온 ‘천황만세’까지 3부 요인들이 공공연하게 외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례없는 장면에 일본의 언론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범한 끝에 패전을 맞이한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168명의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 아베의 ‘침략 물타기’ 발언 등을 비판했다. 우익성향의 요미우리도 “내외에 참화를 가져온 ‘쇼와 전쟁’은 국제감각을 잃은 일본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됐고, 패전과 점령은 그 결말”이라며 냉정히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왜 그렇게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가 독일과 비교하며 일본의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와 일본의 우익들 발언을 ‘자기파괴적 수정주의‘라고 질타했다. 앞서 뉴욕타임즈도 “일본은 적대감에 불을 지르는 미욱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아베는 역사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을 그만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안팎의 거센 눈총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내셔널리즘 자극에 편승한 일본국민 수는 날로 늘고 아베 정권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팽창화가 더욱 가속될 조짐인 것이다. 앞으로 영토문제를 포함해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격한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요즘 미국정부가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있지만, 미국의 행태야 말로 ‘병주고 약주는’ 식의 아이러니이며, 뒷북치기다. 근대 일본 우경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미국 아닌가.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는 침략 원흉들을 뿌리뽑지 않고 오히려 군정에 이용했다. ‘천황’을 폐위시키지 않았고, 전범들을 처단하지 않은 채 다시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재건하게 만들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렇게 일본의 전쟁책임은 유야무야되면서, 우익은 독버섯처럼 세를 부풀릴 수가 있었다. 그런 근시안적인 미국의 ‘성원’으로 재활한 것이 바로 침략을 부인하는 오늘의 일본 우익세력이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도 피점령국의 ‘건강한 재건’보다는 자국 이익에만 몰두한 미국의 원죄가 오늘의 수많은 대립과 분열과, 마찰을 생산해 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당시의 친일부역자들을 남한 군정에 활용해 부활시킴으로서 식민청산의 길을 막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의 한국령 임을 인정치 않아 일본에 빌미를 준 것도 미국이었음은 강자의 만용이요 약자의 한(恨) 일 뿐인가. 
당쟁과 사대(事大)의 습벽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의 거울을 망각한 우리네 한반도에서는 남북간 평화의 보루며 상징인 개성공단 마저 폐쇄 위기에 처했으니,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늘 한스런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