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 비 속에서 초여름을 맞는다. 싱그러운 계절과 달리 오가는 행인들의 품새는 다소 느슨해져 보인다.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서서히 이완되는 느낌이랄까. 때문인지 거리의 차량들도 차츰 줄어드는 듯 하고 팍팍하던 생활권이 헐렁해져 옴을 느낀다. 아이들의 찰진 웃음을 싣고 도심을 빠져 나가는 이들은 가족끼리 장거리 여행길에 오르거나, 호숫가 휴양지에서 도약을 꿈꾸다 여름 끝머리쯤 다시 모여들 것이다. 학생들의 학제에 맞춰 돌아가는 사회 구조가 신선하면서 부럽기도 하고 때론 시류에 편승 못해 안타깝기도 하다. 이제나 저제나 생업에 발이 묶여 온가족 함께 휴가를 떠나기는커녕 꼭 참가해야 할 중요한 자리마저 나서지 못해 발을 구를 때가 많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이지만 늘 이맘때면 떠오르는 서글픈 기억이 하나 있다.
큰아이가 대학 신입생이 되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그의 모교로 부터 졸업식 초대장을 받았다. 구월 어느 날 밤이라는 날짜를 확인하고 나서야 고등학교 졸업식을 건너뛰었다는 생각이 났다. 보통 유월 하순경에 치러지는 졸업식이 몇 달 뒤로 연기된 것도 그렇고 이미 대학생이 되었는데 새삼스레 고교 졸업식을 한다는 것도 의아했다. 어쨌건 온 가족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야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은 게 문제였다. 며칠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데, 전후 사정을 고려한 아이가 혼자 참석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섭섭함 뒤로 장부의 기상이 엿보여 다소 위로가 되었다.
그날 밤, ‘걱정하지 말라’며 당당하게 집을 나섰던 아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예식이 생각보다 성대했고 감명 깊게 치러졌다며 대학 졸업식 땐 꼭 함께 하기를 희망했다. 애써 담담한 척하며 경과를 보고하는 녀석을 보며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하지 못했음이 후회되었다.
2년 후, 둘째의 졸업식 날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함은 그때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큰 아이의 간곡한 권유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이의 고교 졸업식을 놓치고 싶지않아 혼자서 참석했다. 학부형석에 홀로 앉은 나는 쳐지는 어깨를 애써 세우며 식전의 실내를 돌아보았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진정성이 묻어나는 치장이며, 1, 2층 넓은 객석에 빼곡히 들어찬 축하객들의 여유로움이 눈에 들어왔다. 형식보다 졸업생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기 위한 분위기가 읽혀져 좋았다.
잠시 후, 객석의 술렁거림과 함께 백파이프의 선율에 따라 하얀 가운을 걸친 교사들이 손을 흔들며 입장했고 뒤를 이어 청색 물결을 이룬 졸업생들이 자유롭게 들어섰다. 모든 축하객이 열렬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운집한 군중 속에서 용케 어미를 찾아내어 손을 흔드는 녀석, 비단 우리 모자뿐이 아니었으리라.
그 날은 신나는 둘째 옆에 쓸쓸한 표정의 큰아이가 내내 어른거렸다. 단상 위에서 졸업장을 받을 때, 우수 학생이 되어 상장을 받을 때, 꽃다발을 안고 폼 나게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지켜 봐 주고, 시시때때 기쁨을 교감할 수 있는 가족의 부재가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그 자리를 경험하기 전에는 큰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어미였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만 유독 이 일은 미성년의 아이에게 빚 진 마음이 되어 떠나질 않는다.
갓 피어오른 장미꽃 묶음을 기억 저편의 녀석에게 안겨주고 싶은 유월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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