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이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 여야가 우여곡절 끝에 국정조사에 합의했으나 이견의 폭이 너무 커 진상 규명 작업이 자칫 실종될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뒤늦게 새누리당 김무성 권영세 정문헌 등 전·현직 의원과 남재준 현 국정원장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최근 검찰에 고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검찰은 국회 국정조사와 별개로, 이 사건을 기존의 특별수사팀에 맡겨 댓글 공작 사건 이상의 강도로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김무성 의원 등의 발언과 행적을 종합해보면, 지난 대선 당시 ‘원세훈의 국정원’이 여권과 짜고 대화록을 활용한 ‘제2의 대선개입 공작’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의원이 지난해 12월14일 부산 유세에서 문제의 대화록을 그대로 읽은 사실은 영상으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26일엔 새누리당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읽어봤다” “원세훈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협조를 안 해줘서 결국 공개를 못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본인 해명과 달리 발췌본에 없고 원문에만 있다는 ‘저항감’ 등의 표현을 사용한 점으로 미뤄 부산 유세 전에 이미 원문을 입수해서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은밀하고 조직적인 관권선거였다면, 대화록 유출과 낭독은 여권이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온 색깔론을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대놓고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국정원의 정치공작 악습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사례다. 나아가 이대로 두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란 점도 불 보듯 뻔하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대화록을 공개했다는 원장이나, 대통령도 정보수집의 대상이라는 투의 대변인 발언은 지금의 국정원이 얼마나 위험한 조직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국정원 개혁은 시급하고도 절박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 조직이 과거 그리고 지금 얼마나 나쁜 짓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게 필수적이다. 진상을 철저히 확인하고 책임자를 분명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이 괴물 같은 조직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뒤에야 개혁작업도 국민들의 공감 속에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조 단위 가까운 예산과 수천명의 조직원을 갖고 한다는 게 고작 이런 짓이라면, 이런 국정원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촛불시위대가 외치는 진실 규명 요구에 검찰은 진지하게 화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