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목회와 야구에 대해서 짧은 글을 썼더니 잘 아는 목사님이 참 재미나게 읽었다고 하시면서 언젠가 당신이 설교하실 때 한번 인용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국인 투수 류현진에 대해서도 좀 쓰지 하시는 게 아닌가? 실제로 넓고 넓은 목회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 원고지 몇 장의 분량에서 야구와 비교를 하겠는가? 그러니 류현진이 아니라 베이브 루스가 와도 다 쓸 수가 없잖는가.
그러나 존경하는 목사님의 말씀이니 류현진, 현재 한국인의 관심과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서 새 별로 떠오르는 그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물론 선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지난번에 했던 투수의 이야기를 목회에서 하려는 셈이다.
어느 구단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각 구단은 언제나 투수에 신경을 쓴다. 투수가 던지는 공에 의해 경기는 거의 결판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 예산에서 많은 경비가 투수에게 투입된다. 물론 타자도 중요하지만 투수만큼은 더욱 신경을 쓴다. 2012년도의 경우를 보면 최고의 경비를 쓴다는 뉴욕 양키스의 사바티아라는 선수는 전체 예산의 11%를 받는다. 투수 혼자에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이니 그만큼 투수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볼 때 교회의 투수라고 말했던 목사의 위치나 받는 사례가 왜 그리 집중되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어떤 분들은 말한다. 교회 예산의 많은 액수가 목사 혼자에게 집중되는 것이 가장 타당한가 하는 질문을. 그러나 말씀의 책임을 지는 목사로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목사가 잘못되는 날에는 모든 목회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론 투수는 공을 던지는 것에 대해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는 옆을 잘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감독의 사인을 받은 포수의 지도대로 공을 만들고 던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투수는 경기의 운용을 위한 방식을 감독의 아이디어를 따라서 경기를 해야 한다. 지금 투수로 어떤 공을 던지게 해서 경기를 이끌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서 코를 만지거나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포수에게 사인을 보내면 포수는 그 사인을 다시 투수에게 전달함으로 배합이 된 공을 던진다.
이미 말한 그대로 우리 팀의 감독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포수와 같은 당회를 통해 목사님의 목회에 사인을 보내고 계신다. 그럴 때 투수가 결코 흥분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공을 던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목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고 그 뜻을 밝혀내며 또한 당회와 함께 그 사인을 읽고 경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목회를 하다 보면 목회자가 당황할 때도 있고 때로는 용기를 낸다는 것이 만용을 부릴 때도 있고 고집을 피울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위험을 감안해서 장로교회에서는 당회를 통해 함께 업무를 치리하도록 한 것이다. 당회장의 아이디어가 무척 좋고 그대로만 하면 다 잘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함께 의논하고 협력을 구함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화목함이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투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 유능한 투수를 모시지 않는가? 그런데 투수를 마운드에 세워놓고 자꾸만 포수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브레이크를 걸면 투수는 혼미해져서 아무런 공도 제대로 던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목회는 한 사람의 투수로 되는 것도 아니고 포수의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감독의 지시를 받아 모든 경기를 함께 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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