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아들 전재국씨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의 미납 추징금 완납을 위해 가족들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무려 16년이 흐른 뒤에야 감춰둔 재산을 내놓겠다고 했으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것도 검찰 수사의 칼날이 압박해 들어오고 여론의 비난이 홍수처럼 밀려들자 마지못해 두 손을 든 인상이 짙다.
이번 추징금 완납은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낸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의 집중보도와 특별팀까지 편성한 검찰의 집요한 추적이 이끌어낸 성과다. 권력을 이용한 부당한 축재는 결국 꼬리 잡히고 만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것으로, 그동안 환수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 민심의 승리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우선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탈세 등 여러 불법행위를 그대로 둘 것이냐 하는 점이다.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하되 자진납부 등 여러 정상을 감안해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처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래선 안 된다. 부정축재한 비자금을 종잣돈으로 해서 불린 재산이 1조원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천문학적 축재를 해놓고도 “29만원밖에 없다”며 국민을 우롱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돈을 감추는 과정에서 온갖 불법을 다 저질렀음도 드러났다. 불법행위는 법대로 엄정 처리함으로써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이는 것만이 권력형 비리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두고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전재국씨와 미국 캘리포니아에 1000억원대 포도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셋째아들 전재만씨 등의 해외재산이나 금융재산은 이번 납부재산 목록에 하나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신 서울 연희동 집과 경남 합천군의 선산을 목록에 올려놓았다. 선산까지 팔아서 납부하는 모양새를 통해 여론에 호소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2004년 둘째아들 전재용씨 소유의 채권 73억원이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드러났듯이 감춰둔 금융자산과 해외재산이 여전히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부정축재한 종잣돈을 이용해 불린 재산이라면 추징금 완납과 별개로 이 역시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
그동안 열심히 수사해온 검찰은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해 마지막까지 엄정한 잣대를 유지해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또 이번 기회에 차명계좌를 개설해준 금융기관만 처벌하게 돼 있는 금융실명제법이나, 체납하더라도 가산금이나 이자가 붙지 않는 형사소송법상의 추징금 제도 등도 손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