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작은딸이 “강추”하던 웹툰인데, 내내 못 보다가 영화로 보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잘 훈련된 간첩들이 남파된다.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고작 달동네 바보나 가수 지망생으로 ‘암약’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령도 몇년째 내려오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나아가자 남파된 간첩들을 부담스럽게 여긴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자결을 명령한다.
이렇게 해서 코믹하게 시작한 영화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남파 시점부터 마땅한 임무마저 없던 이들은 남북 화해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시대착오적인 제거 대상이 된다. 그런데도 그들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달동네 이웃에 대한 이들의 살가운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정부간 협상으로 간첩이 소모품처럼 내버려지는 비인간적 상황에 저항하는 기관원의 모습도 다룬다. 국정원 직원 서수혁(김성균 분)의 행동이 그렇다. 그는 원류환(김수현 분)이나 리해진(이현우 분) 같은 ‘멋진’ 간첩을 억울한 희생에서 건져내려 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서수혁의 유니폼 한가운데 새겨진 NIS가 근사하게 보이기조차 한다.
영화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이산가족 상봉 합의,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황당해 보이던 DMZ 평화공원조차 안 될 게 뭐 있나 싶은 게 요즘 남북관계의 분위기다.
이런 화해 분위기 속에서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집단, 정확히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남발했다는 통합진보당원들이 국정원에 의해 제거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거기까지다. 통합진보당이나 국정원이 은밀한지는 모르겠으나 위대하진 않다. 위대하기는커녕 “찌질하다.”
영화에서 간첩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고난을 전혀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압수수색이 시작된 그 시점에 곧장 자신의 결백을 당당하게 주장하지 않고 하루 뒤에 나타났다. 변장하고 도주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소설로 보이지만, “달동네 바보”로 암약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 뒤에 나타나는 건 찌질했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장난감총을 가스쇼바로 개조하면 사람을 조준하는 일반총”이라며 “인터넷에 무기를 만드는 기초가 나와 있다”고 말했단다. 내란 모의는 고사하고 은행강도 모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정보를 새로운 이야기인 양 말하는데, 인터넷에 핵폭탄 만드는 법마저 나오는 세상인 걸 생각하면 검색 능력마저 찌질하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국정원 직원은 서수혁을 닮은 데가 있는가? 전혀 아니다. “대북”인지는 모르겠다만, 인터넷이 여론을 주도하는 세상에서 댓글은 나름 급소를 파고든 “심리전”이었다.
하지만 천막 뒤라곤 해도 청문회에 불려나온 “김직원”으로서는 댓글 공작을 스스로 찌질한 것으로 포장해야 했다. 그러니 수치스러운데다가 조직에 위협적인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위대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법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댓글 공작보다 더 찌질하다. 법원의 감청 허가를 얻어 몇 년을 감청하고도 쓸 만한 것을 못 건졌는지, 몇몇 신문 기사에 따르면 정작 내란음모 혐의를 엮을 근거가 된 것은 뉴질랜드 이민 갈 돈을 주고 제보자에게 사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녹음파일이란다. 감청 실력이 엄청 찌질한 셈이고, 그걸 위해서 내 세금이 쓰였다고 생각하니 댓글 때보다 더 아깝게 느껴졌다.
아무튼 지금 벌어지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대착오적인 우익 조직이 가장 시대착오적인 좌파 집단을 수사하고 있는 것인데, 유일하게 위안 삼을 것은 이제 이들의 찌질함이 은밀하진 않게 된 것인 듯하다.
<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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