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이 임기를 1년7개월 남겨두고 전격 사퇴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원장이 청와대의 논공행상식 인사 개입에 반발해 물러났다거나, 4대강 감사 결과를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 탓에 사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야 어찌됐든 임기 4년의 감사원장이 중도에 사퇴한 것은 감사원의 중립성이 또다시 훼손된 중대사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양 원장 사퇴가 청와대의 무리한 인사 개입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청와대는 공석인 감사위원에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선대위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인수위의 정무분과 위원을 지낸 장훈 중앙대 교수를 내정하고 양 원장에게 제청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 원장은 캠프 출신 인사가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감사위원으로 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결국 사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양 원장 사퇴가 감사위원 인사 때문인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도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만한 인사가 추진된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선 캠프 출신인 은진수 감사위원을 임명함으로써 감사원 독립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지켜본 터에 또다시 현 정부에서 캠프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 든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과거 정권의 잘못된 인사를 반면교사 삼아도 모자랄 판에 이를 따라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 원장 사퇴가 4대강 감사를 둘러싼 권력다툼 때문이라는 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했다는 지난 7월의 3차 감사 결과를 놓고 권력 내부에서 이런저런 분란이 일자 양 원장이 결국 토사구팽됐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감사원장이 감사 결과 때문에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감사원의 4대강 감사를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이 양 원장 사퇴로까지 번진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그 진상이 명확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정권이 감사원을 통치에 이용하려 들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감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지는지 여부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지금처럼 감사원 중립성 논란이 매번 되풀이돼서는 선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감사 기능의 국회 이관 등 제도적 방안도 더욱 연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이 감사원을 수족 부리듯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정권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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