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일 국무회의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탈세를 뿌리뽑고 복지예산의 누수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에 복지를 위한 증세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먼저 이런 기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제개편안으로 촉발된 논란의 핵심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적 논의를 열어가는 정치 리더십을 보이기는커녕 허구로 판명난 잘못된 가이드라인을 고집한 데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 말대로 탈세를 뿌리뽑고 낭비되는 누수액을 줄여 복지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마련할 수 있는 돈은 5년간 복지공약에 필요하다고 공약가계부를 통해 제시한 135조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연간 수조원의 세수를 확보한다는 목표에 세정당국인 국세청마저도 회의적인 게 현실이다.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통과된 금융거래정보법을 두고 지하경제 양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처럼 화살을 돌린 것도 엉뚱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또 지난 3년간 복지 누수액이 5600억원에 이른다는 감사원 자료를 들었지만 그런 정도로 복지재원을 충당할 수는 없다.
이번 세제개편 논란이 의미있는 것은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이나 보수언론조차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복지공약을 지키는 데는 당연히 돈이 든다. 그 돈은 정부가 증세를 하거나 빚을 내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도 체제 안정과 사회 발전을 위해 복지문제 해결은 필수적 과제이며, 복지에는 반드시 재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복지를 한다는 것은 말의 유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정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다수는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며, 복지를 위한 세금을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해 ‘복지=증세’는 상식이 됐다.
따지고 보면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혼란의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증세는 없다는 가이드라인 탓에 정부 관료들이 비과세·감면 축소라는 손쉬운 거위 깃털 뽑기에 나섰다가 호된 역풍을 맞은 것이다.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먼저 올리지 않고 나머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데 대해 국민들이 반발한 것인데, 불만의 원인은 해결하지 않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세금을 낮춘 것은 전형적인 땜질식 처방이다. 박 대통령은 복지와 증세 둘 가운데 하나를 진솔하게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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