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일 저녁 열린 ‘제6차 범국민 촛불 문화제’에는 서울광장에만 5만여명이 모이는 등 전국에서 10만여명이 촛불을 들고 나섰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10만 촛불’이 타오른 것은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그만큼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국가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통령은 사과하라는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정당한 요구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이를 대선 불복 운동으로 헐뜯으며 구태정치로 몰아붙이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촛불민심을 외면해선 국정을 정상적으로 이끌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촛불시위가 시들해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촛불집회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 때문에 ‘국정원 국정조사’가 파행한 탓이 크다. 애초 국정조사가 이뤄지면 지난 대선 때의 국정원 댓글 사건 진상이 밝혀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 편에 서서 진상 규명을 사실상 방해해왔다. 더욱이 댓글 달기를 정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하는 국정원을 옹호하는가 하면 이번 사건을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둔갑시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거리로 내몰았다. 새누리당은 이런 억지를 그만두고 국정조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협조해야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 대통령은 더 문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덕 본 게 없다며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으면 이런 국기문란 행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가리고 책임자를 문책하는 게 민주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덕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나중 문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행위를 묵인하고 앞으로도 이런 국기문란 행위를 방조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행위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국정원 전면 개혁을 약속해야 한다. 이것이 10만 촛불민심이다. 이는 여야가 적당히 타협하거나 주고받을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