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에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타령’이 계속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인문학계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교사들이) 편협한 자기 생각을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굉장히 위험하고 잘못하면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언제는 “말 곱게 하자”던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막말이다.
이건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6월에 한 언론의 설문조사를 인용하면서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논란을 불러온 ‘대통령 설화사건’이 일어났다. 필자가 굳이 ‘설화사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박 대통령의 그 말 한마디가 우리 교사들과 학생들이 졸지에 비정상인 취급을 받도록 했고, 교육 현장에서 일대 소동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역사교육이 문제라고 하니까 곧이어 “국어교육이 더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한자교육의 부실이 더 문제”라는 또다른 논란도 이어졌다.
이 논란이 이어지던 중 야당 의원이 만주국의 역사를 파헤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역사책의 ‘귀태’라는 용어를 인용하자 청와대가 이를 문제 삼고 정국이 경색되는 ‘설화사건’ 제2탄이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역사논쟁이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급소라는 사실이다.
한편 교사에게만 역사교육을 맡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군부대에서 임무수행 바쁜 군인들을 학교 안보교육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전방이야 학교가 적으니까 문제가 안 되지만 후방 부대는 1개 연대가 70여개에 이르는 학교에 안보 강사를 지원해야 하니 본업은 아예 제쳐놓고 학교로 출근을 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다 역사·국어·한자를 교습한다는 각종 교육기관과 학원들까지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익을 계산하며 교육의 문제점을 더 부각시키는 데 합류했다.
지난 정권에서는 “영어교육이 문제”라며 몰입교육인가 뭔가 한다고 하더니 틈만 나면 학생들을 물고 늘어진다. 이건 ‘교육대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게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런데 학부모인 필자가 아무리 이걸 말한다 한들 우리 대통령은 자식 키우는 게 뭔지, 사교육으로 허리가 휘는 게 뭔지 겪어본 적이 없어서 영 알아들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하는 그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란 게 도대체 뭔가? 병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기 때문에 만주국의 역사, 전쟁의 역사, 독재의 역사를 묻어두자는 이야기인가?
성경이 위대한 역사책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치부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 신을 어떻게 배신했는지 지저분한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렇다고 이런 성경을 끼고 사는 이스라엘에서 역사를 자학이 아닌 긍정으로 바꾸자는 정치 지도자는 없다.
프랑스 전쟁박물관에 들어서면 첫 글귀가 “우리의 어떤 잘못이 독일의 침공을 초래했는가”이다. 이 때문에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 가혹했다고 인정하며 전쟁 발발 당시에 프랑스 집권세력의 무능을 다 고발하는 게 프랑스의 전쟁 기념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독일의 방송은 지금도 매일 자신의 치부를 고발하고 반성하는 방송을 내보낸다. 국가의 격이 높고 향기가 난다.
우리는 긍정의 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역사는 철저한 자기부정과 반성을 통해 발전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안보교육이나 정전 60주년 행사는 전쟁에서 패주하며 국민도 버리고 도망간 한국전쟁의 폐족까지 영웅으로 만드는, ‘반성하지 말자’는 역사교육이다. 이건 역사교육이 아니라 군대의 정신교육 또는 정훈집체교육에 가깝다. 이런 대통령의 역사논쟁에 내 아이들이 비정상인 취급을 받고 사교육비가 더 지출될 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 김종대 -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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