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도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야스쿠니 반대 행사에 발표자로 참석했고, 10일 저녁에는 촛불시위에도 참석했다. 도쿄의 살인적인 무더위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러나 이 무더위보다 더 숨을 막히게 한 것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소위 우익들의 거친 맞불 시위였다. ‘애국’의 이름을 건 온갖 단체들이 고성능 확성기와 욱일승천기를 단 차를 골목과 거리마다 배치해서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을 울려댔기 때문에 300명 남짓한 시위대의 구호는 들리지도 않았다.
A급 전범 기시의 손자인 아베가 집권한 일본은 이제 거침없는 국가주의의 길로 치닫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헌법을 개정해서 ‘천황을 받드는 국가’의 국방군을 창설하겠다고 한다. 급기야 부총리인 아소는 나치의 수법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베 내각의 일부는 오는 15일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 ‘호국의 신’이 된 영령을 왜 참배해서는 안 되는가”라고 하면서 대거 야스쿠니로 몰려갈 것이다.
도쿄에서 시위를 하던 바로 그 시간에 서울에서는 국정원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5만의 시민이 모였다. 일제하 조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악명 높은 정치경찰, 즉 특고의 고문, 사찰, 공작 정치의 수법을 배워서 만든 중앙정보부, 즉 오늘의 국정원이 국민주권을 농단하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한 항의다. 독립군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의 딸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녀는 민주주의 암흑기 70년대 공안검사로 활약한 김기춘을 최측근으로 불러들였다.
일본이나 한국의 집권층은 모두 ‘국가’의 이름으로, 극히 초보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와 책임정치의 원칙을 뭉개고 있고, 주요 방송과 신문을 정부 홍보지로 변질시켰다. 정치적 반대자를 비국민으로 몰아서 무자비한 채찍을 휘두르던 제국주의 일본은 이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스멀스멀 부활했다. 그런 두 나라의 실상은 어떤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일본 땅의 일부는 폐허가 되었고, 한국의 강들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자살률 세계 1,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민의 삶의 질이나 사회적 권리, 특히 노동자와 여성의 지위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언제나 바닥 자리를 다투고 있다. 천황제와 국가보안법이 국민의 복종을 강요하는 우익 독재 60년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그래도 한때 제국의 야망을 불태웠고, 미국의 안보 우산의 보호와 한반도의 전쟁을 돈벌이 기회로 삼아 경제 기적을 이룬 일본은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 식민지의 굴욕을 겪은 뒤에도 일본 대신에 전쟁과 분단을 겪은 한국은 도대체 뭔가? 아직 일제 말 징용·징병으로 개죽음을 당한 조선 청년들의 원혼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일본이 국방군을 만들면 투입될 나라는 사실 한반도밖에 없다. 과거 일본이 청일전쟁의 명분으로 한반도에 들어와서 조선 왕조를 대신해서 동학군을 진압했듯이,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하면 그들은 또다시 들어올 것이다. 남한의 ‘친미애국’ 세력은 곧 ‘친일애국’ 혹은 ‘친중애국’ 세력으로 변할 것이다. 국가니 애국이니 하는 구호는 사실 그들의 사적 욕망을 달리 표현한 것이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채더라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일본이 국방군을 만들면 투입될 나라는 사실 한반도밖에 없다. 과거 일본이 청일전쟁의 명분으로 한반도에 들어와서 조선 왕조를 대신해서 동학군을 진압했듯이,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하면 그들은 또다시 들어올 것이다. 남한의 ‘친미애국’ 세력은 곧 ‘친일애국’ 혹은 ‘친중애국’ 세력으로 변할 것이다. 국가니 애국이니 하는 구호는 사실 그들의 사적 욕망을 달리 표현한 것이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채더라도, 이미 때는 늦었다.
국가주의 극우 정치의 종착점은 전쟁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최대 희생자들은 일본과 조선의 가난한 청년들이었듯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분쟁과 갈등이 발생하면 또다시 그들이 먼저 죽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들은 경제 전쟁에서 지금 매일 죽어가고 있지 않나?
한·일의 청년들이여, 정신 차려라!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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