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청와대 비서진을 대폭 개편했다. 공석이던 정무수석을 임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서실장을 포함해 5명의 참모를 5일 전격 교체했다. 정부 출범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사실상 2기 청와대를 출범시킨 것인데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의 기용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공안통인 그는 전직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대선 당시 김기춘 전 장관이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 지원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다 발각된 것이다. 김 실장 같은 이가 그 후로도 지역구도에 기대어 국회의원을 내리 세 번이나 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김 실장을 발탁한 것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부리기 좋은 사람을 쓴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로 상징성이 크다. 김 실장의 발탁은 쉽게 말해 유신 시절의 청와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비친다. 김 실장 이력으로는 경제민주화나 복지, 창조경제 등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신 시절처럼 상명하달 식으로 군림하는 청와대 상이 그려질 뿐이다. 김 실장이 박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실세그룹인 이른바 ‘7인회’ 구성원이라는 것도 꺼림칙하다. 원로자문그룹은 조언하는 일에 충실한 게 좋다. 권력에 직접 간여했다간 쏠림현상을 가져오면서 오히려 뒤탈이 날 수 있다.
공안 검사의 득세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김 실장을 필두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홍경식 신임 민정수석 등 정부 요로가 공안 검사 출신들로 가득하다. 이는 외교안보 라인이 군 출신으로 채워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군 장성과 공안 검사 출신들로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 그들의 갇힌 상상력으로는 나라의 미래를 이끌 수 없다.
박준우 신임 정무수석의 발탁도 이상하다. 줄곧 외교관으로 공직 생활을 해온 사람을 국내 정치 담당에 앉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당한 사람을 더 찾거나, 정무수석을 폐지 또는 통폐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사람을 굳이 데려다 앉힌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번 인사의 최대 문제는 그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의 인사 실패와 국정 난맥상에 대한 문책성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실타래처럼 얽힌 정국에도 더 적극 대처하겠다고 보기에는 새 진용이 너무 구시대적이고 무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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