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수호해야 할 ‘한국혼’

● 칼럼 2013. 8. 11. 18:12 Posted by SisaHan
이민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김치와 된장의 맛은 못잊는다. 장구와 꽹과리로 흥을 돋우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우아한 한복을 보면 따스한 정감이 느껴진다. 영어에 주눅이 들긴 해도 한글에 자부심이 강하고, 성군 세종대왕의 업적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광활한 만주를 호령했던 광개토대왕의 기개와 거북선으로 왜적을 격멸한 충무공 이순신의 위업도 장쾌하다. 독도 도발에 공분하고, 올림픽 시상식에 태극기가 게양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왜 그런가. 바로 한국인이요 한국 혼(魂)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그러면 한국적 혼이란 무엇인가. 달리 말해 민족혼 혹은 민족정신이라고도 할 한국인만의, 한국인에게만 흐르는 혼과 정신은 무엇이던가.

민족혼, 민족정신이란 그 민족만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신, 또는 한 민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개성이나 문화적 특성을 말한다. ‘민족정신’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민족정신이란 개인정신이나 개인정신이 상호작용하는 총체 이상의 것으로, 이것을 초월하여 민족에 내재하는 실체로서의 정신이며, 민족의 언어 ·민요 ·민화 ·풍속 ·법 등을 창조하는 원천”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인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투사였고 사상가이며 사학자이기도 한 박은식 선생이 ‘국혼(國魂)’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해 “국가나 민족의 흥망은 국혼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고, 이 국혼은 바로 역사에 담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독립정신을 함양하고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역사서술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학자요 문인이기도 했던 정인보 선생은 ‘얼’이라는 표현을 써서 저서 「조선사연구」에 실린 ‘오천년간 조선의 얼’에서 역사의 본질을 ‘얼’ 즉 민족정신에서 찾는 ‘얼 사관’을 정립했다. 이밖에 한국 고대사 연구를 중시했던 신채호 선생은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들은 독립성과 민족적 패기가 있었으나, 중세 이후로 오면서 그것이 없어지고 사대주의로 빠져들면서 쇠퇴해갔다”면서 고대사의 영광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 모두 일제 식민치하에서 역사적 자존감 회복을 통해 독립정신을 고양하려는 관념적·계몽적 의도에서 역사에 기초한 민족정신을 주창한 측면이 있다. 오늘날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공화제 민주주의를 내다본 건 아니겠지만, 민족 암흑기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우는 데는 큰 토대를 이뤘음에 틀림없다. 그 결과 3.1독립운동의 불길이 솟아올랐고, 상해 임시정부가 건립됐으며, 조국 광복운동이 번져나갔던 것이다.
 
캐나다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 시민권을 가졌어도 모국을 그리워하는 까닭, 바로 ‘혈맥’(血脈) 때문일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몸속의 피가 한국인의 것이요, 마음과 정신세계에 흐르는 영혼의 혈액이 한국의 그 것으로, 한국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길들여졌던 태생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흐르는 연유다. 심지어 이민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2세들도 정도의 차는 있되 자신의 영(靈)과 육(肉)에 지워지지 않고 흐르는 한국적 혼을 깨달아 방황하고 맴돌다 회귀하는 모습들을 본다. 
얼마 전 토론토에서 ‘국혼수호’를 기치로 내건 단체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 국내도 아니요, 캐나다 시민권자들이 한국의 국혼을 수호하겠다고 나섰으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전세계 한인사회 어디에서도 민족의 혼을 수호하겠다고 외치는 단체가 없는 터에, 용기있게 선봉장이 되어 깃발을 들어 올렸으니 얼마나 장하고 칭송받을 애국의 발로인가. 더구나 한인사회 결속을 도모하고 애국적 양심과 국민적 도덕심에 따라 필요시 ‘행동’에도 나선다는 결의를 보여 든든함을 주었다
그렇다면 수호해야 할 한국과 한국인의 국혼은 무엇일까. 형이상학적 용어인 ‘국혼’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한 백의민족의 평화사랑과 은근과 끈기, 그리고 강한 자주 독립정신, 불의에 대한 항거, 그리고 인지상정과 상부상조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한국 혼을 지키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국혼수호’ 활동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정세가 ‘국혼’을 갈수록 상실하고 외면하고, 때로는 짓밟는 양태들이 횡행하는 듯 해서다.
예를 들면 독립운동을 토벌했던 일제부역자와 친일 독재자들을 추앙하는 풍조를 국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을 망각한 정치행태 역시 그렇다. 
국혼을 더럽히는 일들은 그 외에도 너무나 많다.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 및 4.19 민주이념 계승을 명시한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8.15 건국절 주장, 쿠데타와 독재를 미화하고 지역감정과 ‘북풍’을 정치에 악용하는 작태, 민주 실현에 몸 바친 희생자들을 매도하는 모리배들, 국가와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정부기관과 공복이 아닌 사익과 정권의 충견이 된 공직자들과 그들의 불법 정치공작의 악습 등등이 자랑스런 한국의 국혼이 아님은 지극히 명백하다. 
한국의 유구하고 자존어린 국혼에는 정의와 도덕,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도 담겨있다. ‘국혼수호’란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바로 그런 것들을 바로잡고 굳건히 지켜가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국혼수호 활동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