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心(일심)’이 처음 내 마음을 끌었던 건 대략 여섯 살쯤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우리 집은 제법 큰 ㄷ자 형으로, 대문을 들어서면 세 들어 살던 마부 아저씨의 마구간이 있었고, 마당 가운데는 큰 우물이 있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마부 아저씨는 웃통을 벗고 말없이 그러나 힘차게 몸을 씻었다. 그때마다 울퉁불퉁 어깨 위에서 움직이던 一心이란 푸른 표식이 참 묘했다.
입대 후 1년이 조금 지난 연말에 카드를 1장 받았다. 엽서 크기의 화포(畵布)에 담긴 묵화와 一心이란 단어. 화가인 자형의 그림 뒷면엔 시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작은 누나의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원입대를 했던 그 시절, 여러 구차한 사정들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 속의 一心을 꺼내 보았다. 그래 할 수 있다면 이걸 삶의 방향으로 삼자. 1979년이 저물어 가던 겨울, 혼자만의 어설픈 다짐을 새겨 보았다.
“아빠, 우리 집 가훈이 뭐야?”.
“一心”.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학교 과제물 덕분에 엉겁결에 가훈이 생긴 셈이었지만, 단번에 그렇듯 고전적인 가훈을 일러줄 수 있는 가장이 된 자신이 마냥 대견했다.
“아니, 그게 무슨 조폭 문신 같은 소리예요. 좀 뼈대 있는 집안처럼 일러주지 못하고!”.
이후로 가훈 얘기만 꺼내면 여지없이 아내의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어쨌거나 그 엽서 그림이 까만 테두리 액자에 담겨 슬그머니 가훈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그 날이 시작이었다.
‘지어진 대로/ 온 힘을 다해 몸짓하는/ 바람 들녘의 야생화.// 한 떨기 엉김 속에 이는/ 참, 아름다운 거/ 참, 자유로운 거.// 평생을 바라며/ 매일을 새기는/ 한마음 한목숨.’
가족을 한국에 두고 먼저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를 때 그 까만 액자도 함께 품었다. 지금은 친척처럼 지내는 매카트니 아저씨 댁에서 몇 달을 머물던 어느 날, 엽서 그림 뒤에 눌러 쓴 다짐이었다.
‘집안 어른들이 그 자녀나 제매에게 주는 교훈’, 내가 사용하는 민중서림 국어사전에 나오는 정의다. 인터넷 다음사전을 열어보니 ‘법도 있는 집안에는 자손 대대로 물리는 가훈이 있다’는 예문도 보인다.
그랬다. 이게 우리 가훈이요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했던 것은 아내의 핀잔 탓이 아니었다. 후대 교훈은커녕 서툰 삶의 몽상이 될 공산이 크니, 사전적 정의에도 안 맞고 예문에 비춰 보긴 더욱 어림없는 노릇인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느닷없이 아내와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34년 된 엽서 그림의 뒤를 내보여 주며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 까닭은, 며칠 전 만났던 닥터 로이트만의 미소 띤 얘기에 힘입어서다.
“오래 잘 참았다. 수고했다. 6년이 넘도록 아무런 이상 없이 모든 게 좋으니 더는 올 필요가 없다.”
캔서 서바이벌을 선언하는 의사의 음성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이제 살아라, 마음 품은 대로 힘껏 살아서, 사랑할 것들을 더욱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 같아서.
34년만의 공개와 함께 시작된 우리 집 가훈의 전설 따라 삼천리. 얘길 듣던 아내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리고,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하지만 비로소 가훈이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김준태 - 시인. ‘시.6.토론토’동인 / ‘시와 시론’으로 등단 >
펜클럽 회원,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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