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미국의 한 호텔에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객실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나갔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까만 옷에 까만 모자를 쓴 아빠와 아들로 초등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이들이 정통파 유대인인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왔는데 먼저 온 자기들이 타지를 않고, 나보고 먼저 타라고 손짓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로비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버튼을 눌렀습니다. 회전문으로 호텔 밖으로 나가는데도 내가 다가가서 회전문이 움직이자, 이 두 사람이 회전문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왜 그럴까?’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바로 그날이 토요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교를 믿는 이들은 안식일 법을 철저하게 지킨 것이고, 개신교 목사인 저는 이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도록 친절하게 도와준 셈이었습니다.
 
유대교 랍비 마빈 토게어는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우리 모두가 알듯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고난을 많이 받은 민족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 비결이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지켜낸 안식일이 삶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한국 민족을 유대민족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고난을 많이 겪은 것,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것, 작은 숫자지만 어디를 가나 두각을 나타내는 것,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우리의 안식일인 주일을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수주일하는 것은 교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는 공감대가 확고하게 있습니다. 저는 안식일 지키는 이 전통이 우리의 이민생활을 지켜준 또 하나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이민자들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바쁘고 힘든 이민 생활에서 삶의 여유를 찾고,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삶의 소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안식일이 우리를 지킨 셈이죠.
 
목사들의 목사로 불리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일요일에 안식일을 잘 지키도록 도와주고, 성도들은 목사들이 월요일에 안식일을 잘 지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그 이유는 ‘건강한 거리두기’(distancing)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 속에서 살다가 안식일을 지킴으로 자기 삶으로부터 건강한 거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반면에 목회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특히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집중되는 말씀과 예배 사역 속에 파묻혀 있다가, 월요일에 안식일을 지킴으로 목회로부터 건강한 거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결국 이 건강한 거리두기를 통해서 교인과 목회자 모두가 삶에 대한 여유를 회복하고,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내적 공간을 만들며,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가지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영혼의 리프레쉬(refresh)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인은 일요일을 잘 보내야 삶이 건강해지고, 목회자는 월요일을 잘 보내야 목회가 건강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대의 사상가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 하루라도 소유 양식(having mode of existence)으로 사는 것에서 벗어나 존재양식(being mode of existence)으로 살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호텔에서 만난 유대인 부자의 모습은 우리 한인 이민 1세, 2세 안에서도 계승되어야 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 사회도 계속해서 건강하고 발전적인 이민 공동체로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