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큰 나무들을 많이 보았다.
스위스 루체른의 필라투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오면서 케이블카 높이만큼 키큰 나무도 보았고, 캐나다의 록키와 미국 서부의 워싱턴주에서의 거목들은 그 굵기가 성인 열 사람은 빙 둘러야 할 정도의 큰 나무도 보았다.
이런 거목들은 굵고 키가 무척 크다. 서로를 의지하며 경쟁하듯 자라는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가 다른 나무와 같이 크지 않으면 햇볓을 못 받아 스스로 죽어가기 때문에 어떻하든 크기를 맞추어 자라나야 한다. 다행히도 이런 곳은 나무가 자라기 좋은 기후와 토질과 비가 풍족한 곳들이다.
그러나 진짜 거목은 따로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는 동네마다 ‘당산나무’라는 나무가 있어서 농부들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어린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되어 주는 고마운 나무들이 있다.
특징이 있다면 ‘거목’이라는 것이다. 마음껏 가지가 자라나서 그 큰나무의 그늘은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 되어 준다.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는 숲속의 나무들은 자기의 ‘크기 비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다. 수분이 풍족하여 뿌리가 멀리 뻗어나가지 않아도 되는 자연조건도 한 몫을 한다. 어마 어마한 나무가 쓰러져 있는데도 그 뿌리는 너무 작음에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홀로 선 나무들은 그 뿌리가 넓고 깊게 자리잡게 된다. 홀로 바람에 견뎌야 하고, 홀로 선 땅에서 물을 찾아 뿌리를 깊이 내려야한다. 가뭄과 홍수에도 홀로 견뎌야한다. 세월이 지나 거목이라 칭함을 받을 때 쯤은 지축이 흔들려도 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다. 잔잔한 호수에서 익숙한 사공이 나올 수 없듯이, 무리와 휩쓸려 삶을 살아가다 보면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없다. 묵묵히 홀로 가는 외로움의 길을 갈 때, 그 길을 견디어 나갈 때 성숙되며 개성이 다듬어지고, 마침내 빛나는 보석같이 변하여 지는 것이다.
‘족적을 남겼다’ 라는 말은 홀로 그 길을 갔기 때문에 그 발자국이 남는 것이다.
외로움과 두려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그만의 향기와 그만의 품위와 기상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홀로 있어도 외로울 틈이 없어야한다. 고독하다고 슬퍼 할 것이 아니라 고독을 즐기며 음미 할 줄 알아야 한다.
27년간의 감옥생활로 인생의 황금기를 깡그리 말살당하였어도,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고 온 국민으로 부터 추앙을 한몸에 받았던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전 세계의 국가 지도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모였다.
그는 진정한 거목이었다. 그 뿌리는 온 지구에 넓게 자리잡았고, 지구를 뚫을 정도로 깊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 누가 27년의 긴 시간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뜻을 굽히지 않고, 꿈을 버리지 않고, 외로움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거목이 쓰러진 지금, 지구가 흔들렸다. 고인의 강철같은, 아니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인격을 닮고 싶다.
보내는 아쉬움이 크지만, 우리들도 우리의 미래에 이런 거목이 또 자랄 수 있도록 나의 자녀들부터 과보호의 틀에서 빼어 내 보자.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서로 키가 더 크지 않으면 죽고 마는 숲에서 탈출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런 거목이 많이 자라서, 우리들의 미래 만큼은 지금과 같은 정치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아니! 반드시 만델라 같은 거목이 나타날 것을 믿는다.
< 정훈태 - 토론토 동산장로교회 장로 >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한국인의 건강한 역사의식 (0) | 2014.01.13 |
---|---|
[사설]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누구위한 것인가 (0) | 2014.01.13 |
[1500자 칼럼] Whistle Blower (0) | 2013.12.24 |
[사설] ‘안녕 못하다’는 학생들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0) | 2013.12.24 |
[사설] 김정은, ‘공포정치’로는 정통성 얻지 못한다 (0) | 2013.12.24 |
[한마당] 당신들의 문학은 안녕한가요? (0) | 2013.12.24 |
[1500자 칼럼] 늑대가 되자 (0) | 2013.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