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tle Blower
- 호루라기 부는 사람 -
- 호루라기 부는 사람 -
올해도 한 해가 다 저물어 간다. 유독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며, 잠시라도 생각을 하며,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기쁘고 보람 된 일도 많았겠지만, 적지않은 사람들에게는 슬프고 후회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늘 이번 겨울이 가장 춥고 길듯, 나는 올 한해가 가장 힘이 들었고, 슬픔 많은 해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루어 놓은 일 하나도 없이….
해가 가면 갈수록 생활은 단조로워지고, 느낌도 생각도 없이 살아지는 것 같다. 내가 사물을 또는 사회를 보는 눈마저 좁아져, 모든 것을 내 좁은 눈으로 보려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이 선동처럼 하는 몇 마디에 쉽게 흥분하고 그리곤 잊어버리며 그리곤 이내 호수처럼 잔잔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단조롭고 변화없는 캐나다 생활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민민할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사회는 역동적이랄까? 끊임없이 부닥치고 변하는 사회다. 올해 유난히도 깜짝 놀랄 사건들이 많았다. 하나 일이 터지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도 어느 사건 하나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꼬리를 물고 터져나온 사건 때문에 잊혀졌을 뿐…. 그 어느 해보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한해였건만, 한 해가 끝나는 마당에 나는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몇 명의 개인적인 희생만 있었을 뿐….
영어에, ‘Whistle Blower’라는 단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란 뜻인데, 정확한 뜻을 번역하자면 그런 뜻이라기 보다 ‘내부 고발자’ 또는 ‘양심선언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 조직내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내의 잘못과 비리를 외부에 공개하는 사람이란 뜻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나 쉬운 일이 아니다.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에서는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을 키워주고 먹여주었던 조직, 그리고 오랜 시간 같이 했던 동료들을 배신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자신의 처지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엄청나게 매도되고 나아가서는 생명까지 위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비리를 폭로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심적으로 한 행동과 말 때문에도 조직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특히 위에서 보낸, 보이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거절하는 경우이다.
그냥 시키는대로 했으면 눈치껏 알아서 했으면, 최소한 그냥 보고도 못본 체 하고 입다물고 있었으면 그들의 자리는 조직내에서 보장이 되고, 앞날은 탄탄대로가 되거나 가속도가 붙어 수직상승을 할지 모른다.
한국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유기체적인 사회다.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직장(조직)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하나의 생명체이다. 만약에 거기서 이탈한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뿐더러, 밖에서도 서있을 자리를 못찾는다.
금년 한해에 신문지상에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고 내렸지만, 나는 채동욱, 윤성렬, 그리고 권은희, 이 세사람의 이름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이들은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 그냥 맡은 바 책임을 소신껏 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튀어나온 못이 망치질 당한다고, 한국적인 상식과 정서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보면 그 막강한 자리에서, 도덕적 의심을 받아가며 물러나고, 중요한 직책에서 물러나고, 앞으로 또 어떠한 개인적인 불이익 등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도 후회하고 있을지도, 그냥 입다물고 시키는 대로 했을 걸 하며…,
사실 그들의 행동의 잘잘못을 내가 판단할 처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이 당당해 보이는 것은 웬 까닭인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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