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정전소동

● 교회소식 2014. 1. 19. 17:03 Posted by SisaHan
전기장판이 차가워져 잠을 깨운다. 조절기 작동이 잘못되었는가 하고 더듬더듬 만져봐도 이상이 없다. 벽시계를 보니 자정이 좀 지나는 시계바늘이 희미하게 보인다. 옆에 자던 처도 춥다며 일어났다.
창 밖을 보니 원근 몇 군데 반짝일 뿐 암흑세계다. 또 정전이라니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있는 것인가? 원망도 해보았다. 이 방과 저 방에서 손녀들도 앗 추워라며 오바를 두른 채 리빙룸에 모여 뒤숭숭하다. 날이 밝아졌는데도 계속 정전이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주님의 날이 아닙니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오도가도 못하고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전기 좀 보내주셔요” 하고 떼를 썼으나 말이 없으시다. 때가 되니 배는 고파온다. 양 집사님께서 주신 가스버너가 생각난다. 베란다에서 찾아와 딸이 받아놓은 물로 커피를 만들어 식빵과 함께 아침을 때웠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정전이다. 이리저리 망설이다가 담임(유충식)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송 장로 입니다.” 아침 일찍 전화할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는 눈치인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정전이 되어 지금까지 엘리베이터 작동이 안되고 아파트 24층이라 계단도 못 내려가고요…목사님, 사택은 어떻습니까?” “사택과 교회는 괜찮습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예배시간까지 전기가 안 들어오면 교회에 못 갑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오시게 되더라도 간밤에 진눈대비가 내려서 길이 대단히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든 채 큰 아들네 집에 전화를 했다. “저희들도 정전이 되었어요.” 12층 아파트다. “아이들 둘은 내려가서 교회에 갔고요. 저희들은 가까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생각이어요.” “잘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 고모랑 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 “할 수 없지 않나….” 서로 위로하고 난 후에도 계속 정전이다.
 
벌벌 떨면서도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교회에서는 무슨 말씀을 주실지 모르지만 신앙고백과 찬송가 212장을 부른 후 딸이 기도하고 성경공부 11:16-33 ‘주를 위한 고난과 약함만이 자랑거리’란 주제로 묵상하면서 한 주간의 기도 제목은 각자 만들기로 하고 결단의 찬송 214장을 부른 후 주기도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 후에도 계속 캄캄한 세계…. 밤에 추우니까 두꺼운 옷과 이불을 몇 개 덮어도 매 한가지다. 옆사람이 가까이 하는 것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니 하나님께서는 서먹하게 지냈던 부부간의 사랑을 정전을 통해서 더 가까워지도록 하시는구나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신문기사에 알버타주 북쪽 에스키모가 사는 눈 쌓인 벌판에 고장난 군용헬기가 떨어졌는데 연락 두절, 밤에 더 추운데 몇 명인지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서로 껴안고 따뜻하게 하라고 한 후 자기는 부하들을 껴안고 밤을 새웠단다. 구조대가 와서 대원들은 살아서 구조되었고, 지휘관은 차가운 얼음덩이 시신으로 변했다는 ‘지휘관의 부하사랑’ 이란 칭찬 기사도 떠올랐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또 라면과 누룽지를 끊여 먹게 가스버너를 주신 양 집사님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오랜만에 딸과 함께 신앙토론 등 대화를 하게 하신 주님께도 감사했다.
 
부모를 봉양하는 평소의 몇 십배 이상 신경을 쓰고 있음을 느꼈다. 캐나다 이민오기를 싫어했던 딸을 내가 같이 살기위해 오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된다. 이래저래 안절부절 떨고 있는데 지원이가 친구와 함께 24계란 박스 1개를 들고 올라와 문을 연다. 어머님이 커피를 좋아하셔서 연말선물로 커피보드를 사왔단다. “그렇찮아도 하나 사고 싶었으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고맙다. 고급품이구나” 하고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서로 이야기 하다가 헤어졌다. 
작은 딸 손녀 지원이 얘기로는, “할아버지는 지팡이 짚고 천천히 내려가시고, 할머니는 내가 엎고 내려갈 테니 식구들 모두 같이 아래로 내려가자”고 했단다. “내려가면 어디로 가는데?” “친구네 집으로 가면 되지 뭐!”
 
정전은 계속되고 방안은 악취가 진동해 할 수 없이 압축기로 소변을 내리고, 양동이에 소변을 본 후 베란다에 내 놓기로 했다. 여기까지 정전과정을 쓴 후, 지난 정전사태의 모습을 찾기 위해 일기책을 뒤적여 ‘2013년 7월 8~9일 21시간 정전’ 이란 페이지를 찾아 적고 있는데 탁상 전등과 천장의 전기불이 켜진다. 이 방 저 방 “할아버지 전기 들어왔어요!” 소리치며 좋아한다. 약 37시간 15분간의 정전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전을 통해서 많은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송재현 - 중앙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