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박대통령과 나

● 칼럼 2014. 1. 19. 17:44 Posted by SisaHan
- 희망과 기대 -

제목이 거창하다. 혹시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박근혜 대통령과 나는 일면식도 없다. 이런 인연, 저런 끈을 조사해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접점이라곤 대학 동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입학하던 해 그가 졸업했으니까 역시 얼굴 부딪친 적도 없다.

박대통령과 모종의 연관을 지으려고 하는 나를 보며 혹 토론토 교민들은 <정수코리아> 사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사건. 파독 광부 간호사 출신 2백여명을 모국 방문 환영회에 초청한다며 사기극을 벌인 정체불명의 단체 얘기이다. 권력층과의 거짓된 관계를 내세우며 정당치 않은 일을 도모하는 잘못된 단체일 수도 있다.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박대통령과 나는(물론 그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일별의 관계이다. 지난 1974년 봄 쯤 나는 교정 본관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막 배운 담배를 피워 물고 그곳에 혼자 앉아 왜 고독을 씹길 좋아했는 지 모르겠다. 그때 말로만 듣던 그 피아트 자동차가 정문에서 본관 쪽으로 올라왔다.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므로 직감적으로 그라는 것을 알았더, 한바퀴 돌더니 차는 봄 아지랭이 속으로 멀리 사라졌다.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졸업 후 모교를 추억하고 싶어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학교에 왔으리라. 나중에 얼음공주라고 불리게 된 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별이었다. 폐쇄된 차창 안에서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교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게 그와의 기억의 전부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대통령의 불통의 이미지로 모국이 소란스럽다. 박대통령은 통제된 청와대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대통령 퇴진이라는 돌팔매질을 인내하며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피아트 자동차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차창만한 풍경과 그곳에 실린 추억에 눈길만 주던 그가 생각난다. 

최근 받은 모국의 소책자에서 가슴에 와닿는 내용을 발견했다. <이반 일리히(역사학자)와 나눈 대화>중에서 인용한 것이다. “희망은 자연스러운 선의를 신뢰하는 믿음을 뜻하는 반면 기대는 합리적인 계획과 통제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따라서 희망은 우리에게 선물을 줄 하느님의 자유로운 바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비해 오히려 기대는 예측 가능한 욕구의 충족과 거기에 대한 귄리 주장에 초점을 두고 있는 차이이다.”.

사실 박대통령은 과거 매력있는 대통령 후보였다. 원칙주의자에다가 양보도 할 줄 알고 그리고 사심없는 국정을 펼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도 갖추었다. 유권자들은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민들은 기대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히의 말대로 경제나 정치 분야 등에서 각자 욕구의 충족을 바라면서 권리 주장까지 나서게 됐다. 나는 잘 살고 싶다고 나는 안녕하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비록 이민자이지만- 개인적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가 주던 잔잔하고 결연한 일별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두들 기대의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때 나는 아직까지 희망의 한 조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40년 전 봄날의 그 푸른 일별 때문에. 

< 김형주 - 시인, 해외문학 신인상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부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