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방송사의 요청으로 채용 심사를 보게 됐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응시했는데, 하나같이 선남선녀에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온 청춘들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기자와 아나운서 각 1명씩 단 2명뿐이다. 심사를 본 150여명 대부분이 또다시 취업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사 과정은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심사 도중 불현듯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해 초 내가 속한 연구소는 보조연구원(인턴)을 공채했다. 1명을 뽑는데 휴학생부터 석사 출신 등 ‘빵빵한’ 스펙을 갖춘 이들까지 40여명이 몰렸다. 서류 전형으로 5명을 선발해 하루 날 잡아 면접 심사를 끝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면접이 끝나고 떠났다가 허겁지겁 연구소로 되돌아와 내게 묻는 게 아닌가? “저를 왜 뽑아 주셨습니까?” 청년의 안면 근육은 실룩였고 눈빛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을 최종적으로 뽑아달라고 간청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는 “학력도 스펙도 별 볼 일 없어 인턴직 응모조차 지금껏 서류 전형에 한 차례도 통과하지 못한” 자신을 왜 면접 대상자로 뽑았는지를 진정 알고 싶어했다. 며칠 뒤 그는 연구소로 이메일을 보내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를 자세히 밝혔다.
“내세울 것은 아르바이트 경험뿐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학교에 좋은 학점도 아니었고, 여권도 없는 제게 해외 경험 또한 없습니다. … 많은 인턴직을 알아봤습니다. … 이번 인턴 지원도 포기하던 상태에서 갑작스런 연락이 와 놀랐습니다.”
그는 대학엔 들어갔지만 스무살 이래 수년간 카페, 마트, 편의점, 택배회사 등 숱한 곳에서 ‘알바 생활’을 전전했다. 캠퍼스 낭만은 사치였고 학과 공부에 힘쓰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는 대학생이라기보다도 ‘알바생’이었다. 청년은 이메일에서 세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세상은 제 노력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자격증과 많은 해외 경험 등 많은 결과물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청년에게 말해주었다. 비록 스펙은 보잘것없더라도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치열하게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당신은 충분히 인정받고 한껏 내세워도 좋을 자부심과 자존을 갖춘 당당한 ‘대한민국 청년’이란 사실을….
‘알바생 청년’처럼 청년들의 삶은 푸르름을 구가하기엔 등록금, 실업, 생활고 등으로 너무나 고단하고 애잔하다. 지난 15일 통계청 발표를 보니 청년층(15~29살) 실업률은 8%다. 구직 포기자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10%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 밖에서 대기·포기하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와 미취업 사이를 오가는 청년이 400만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역대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냈고,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 70%를 주창하며 일자리를 강조하지만 청년층 일자리는 갈수록 더 얼어붙는 추세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통계청 발표 직후 여야 정당들의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아졌고, 기획재정부는 청년 취업 활성화 방안을 전격 발표한다고 부산을 떠는데, 낡은 고용 구조를 깰 획기적 대책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짧게 살아온 인생에서 제 삶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저만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런 제 자부심과 자존감을 짓누르더군요. 그깟 알바나 하고 넌 뭐 할래, 그런 경험 누가 알아줄 것 같으냐. 그래도 버티고 버텼습니다.”
오늘도 학업 또는 취업과 생활고 해결을 위해 버티고 있을 ‘알바생 청년’에게 응답한 말을 어디선가에서 버티고 있을 또다른 수많은 청년들에게도 함께 전하고 싶다. “그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 이창곤 - 한겨레 사회정책 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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