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시인 페트로니우스는 황제 네로에게 “다른 것은 다 해도 시(詩)만은 짓지 말라”고 호소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사(교과서)만은 관제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청소년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정부와 기성세대의 엄중한 책무다.
교학사 국사교과서가 학생·교사·학부모들에게 완벽하게 퇴출되었으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지, 마치 보복하듯이 통째로 뒤엎어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겠다는 발상은 역사를 모독하고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다.
관변학자들과 보수언론, 정부기관의 총력지원에도 채택률이 0%인 것은 품질이 떨어진 부실덩어리인데다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과 4월혁명, 6월항쟁 등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켜온 국민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용납할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정부와 관변학자들이 지금을 유신시대로 착각하는 데서 ‘교학사 사태’가 일어났다.
 
고래로 한 나라를 멸망시키려면 가장 먼저 그들의 역사를 파괴하거나 날조한다. 만주족이 중원을 정복하면서 중국사서를 소각·변조하고, 일제는 조선사를 왜곡했다. 총독부는 1916년 <조선반도사> 편찬을 시작하면서 “합방된 이 마당에 조선인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읽게 한다면 옛날을 회상케 하여 독립시대의 구몽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며 왜곡을 서둘렀다. 이에 맞서 박은식·신채호 등 민족사학자들이 망명지에서 “나라를 빼앗겨도 역사(국사)만 잃지 않으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며 <조선통사> <조선상고사> 등을 지었다.
사마천은 “역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파악해서 거기에 필주를 가함으로써” 있어야 할 모습을 제시했고, 실학자 성호 이익은 “역사를 쓸 때는 착한 일을 드러내더라도 악한 것을 감추어서는 안 되며 권선만 하고 징악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새의 날개 하나를 떨어뜨리고 수레바퀴 하나를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실증사학의 대부 랑케도 이념이나 신념, 철학이나 종교에 의해 왜곡되는 역사 쓰기를 거부하고 정확한 사료를 토대로 삼아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진실로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과거 사실의 객관성과 독립성이란 정치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요, 신학으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요, 철학으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다. 그리고 이는 곧 역사학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썼다.
 
정부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학)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을 소략·폄하하면서 그 자리에 친일과 독재를 앉히고 미화한다는 것은 역사의 모독일 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임시정부의 법통과 4월혁명 계승을 명시한 헌법정신의 위배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국사를 정부가 편찬 관장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러시아·베트남·필리핀 정도다. 정부가 북한처럼 따라 한다면 그들이 즐겨 쓰는 ‘종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이 후소사판 교과서를 제작·배포할 때 우리는 이념적 좌우·보혁을 뛰어넘어 강력히 비판하고 일본 정부와 국민을 경멸했다. 타국의 내정간섭이 아니라 침략주의를 미화하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교학사가 욕하면서 배운다고 친일·독재를 옹호하는 등 일본을 닮은 데 분노하고 총체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박정희가 유신시대인 1974년 이른바 ‘국적 있는 교육’의 명분으로 국정화한 교과서는 수명이 10년이 못 갔다. ‘유신교육’을 받은 청년학생들이 더욱 활기찬 반유신 세대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그런데도 이를 다시 되돌리려는 것은 시대착오다. ‘국가’만 있고 ‘역사’가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는 ‘관변역사’를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여당과 교육부 관리들이 냉철한 역사인식보다 권력 쪽에만 기웃거리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
 
< 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