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안현수)이 15일 오후(현지시각) 아이스베르크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얼음판에 입을 맞추고 있다.
멀리 체육계 반칙부터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대통령 주변 상습적인 반칙부터 발본색원해야
빅토르 안 선수가 러시아에 연일 축포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가 쇼트트랙 1500m에서 동메달을 따고, 5000m 계주에서 팀을 결승에 올려놓은 데 이어,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자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메드베데프 총리 심지어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한때 국제정치 무대와 체육계에서 미국과 함께 세계를 호령하다가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소련의 자존심을 빅토르 안이 잠시나마 되살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의 빙상계 나아가 체육계에는 거대한 쓰나미가 되고 있습니다. 5000m 계주 예선에서 4등으로 쳐져 있던 팀을 1위로 끌어올린 그의 기적적인 역주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그가 러시아로 귀화한 배경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안(현수)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와 줄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 대표단은 물론 체육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겠죠.
메달 경쟁에서 대흉작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이를 악물고 뛰는 선수단을 향해 등 뒤에서 총질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빙상계는 물론 체육계의 부조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워낙 컸던 탓에 그런 지적은 간단하게 묻혀버렸습니다. 대신 세심하게 구석을 살피고 따지며, 대중 정서에 찰떡처럼 부응하는 대통령의 ‘깨알 리더십’은 빛을 발했습니다. 특히 빅토르 안 선수가 1000m에서 러시아 동료 선수와 함께 나란히 금, 은메달을 따고 우리 선수는 실격 당하자, 국민들은 다시 한 번 뒤집혔고 대통령의 깨알 지시는 별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안 선수는 1000m 금메달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그건 다 잊고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선택을 한 것이다. 나로 인해서 안 좋은 기사가 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후배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선수들은 올림픽 기간이기에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후배들에게도 미안하다.” 참새의 지저귐에 대한 붕새의 일갈이라고나 할까요, 안 선수의 답변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그의 귀화한 배경은 사실 조사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미 두어 차례 정부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서면서 자리잡기 시작한 출신 학교 파벌주의, 승부 조작이나 다름없는 짬짜미 관행, 그 뒤에서 이루어지는 폭력 등이 그것입니다. 하나로 요약하면 한국 빙상계의 반칙 문화였죠. 경기장 안팎에서 이뤄지는 이런 반칙들이 결국 그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빙상계 뿐일까요? 대통령도 빙상계의 관행을 드러내, 우리 사회 전반의 불공정, 반칙 문화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빅토르 안을 뜨겁게 응원하고 우리 체육계에 분노하는 것도, 바로 그런 사회 전반의 불공정 반칙들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제가 그뿐일까요? 반칙문화의 뿌리가 체육계일까요? 물론 대통령은 이 나라 최고의 심판이니 반칙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내 페널티를 물려야 합니다. 그런데 심판이 패거리 부정과 짬짜미로 선발됐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대선 불복이냐고 펄펄 난리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터무니없는 물틀레질에 진력이 나기도 했지만, 국정원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선거 부정과 경찰 검찰 등 권력기구의 선거 부정 은폐 의혹을 이 자리에서 거론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주심은 그렇다해도 부심들까지 비슷비슷한 전력을 가진 자들로 채워져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대통령의 주변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윗물을 깨끗이 하지 않고, 아랫물만 정수한다고 물이 맑아질 리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이른바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영화 ‘변호인’으로 주목을 받았던 부림 사건 또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검찰이나 국정원 혹은 경찰이 지어낸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탈북자 유우성 간첩 사건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조작된 증거로 유죄 입증을 하려 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을 겁니다. 빅토르 안 선수에게 가해졌던 반칙보다 더 심각하고 중대한 반칙입니다. 그런데 그 주역들은 대부분 당신을 도와주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유신정권의 인혁당 사건 이후 최대의 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유서 대필 사건을 일으켰을 때의 검찰 수뇌부와 수사 검사들은 대부분 지금도 박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이고, 사건을 지휘했던 강신욱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낸 뒤 2007년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지냈고, 수석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는 지금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남기춘 검사는 2012년 박근혜 대선 캠프 정치쇄신특위 클린정치소위원장을, 곽상도 검사는 이 정부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습니다. 다른 검사들도 한나라당 혹은 새누리당 주변을 기웃거렸죠. 유유상종일까요, 아니면 오비이락일까요.
멀리 체육계의 반칙을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바로 대통령 주변의 상습적인 반칙부터 발본색원해야 합니다. 목숨 걸고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까지 간첩으로 몰아 ‘한 건’ 하려고 했으니, 안 선수에 대한 반칙이나 신안 염전 ‘노예 노동’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그들을 정리하고, 그런 관행을 청소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서 불공정과 반칙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짬짜미와 파벌주의가 없는 곳에서 빙상 역사를 다시 쓰는 안현수 선수를 지켜보면서, 반칙의 뿌리에 대한 발본의 의지를 더욱 더 가다듬기 바랍니다. 새누리당도 체육계 부조리 청산 궐기대회라도 할 모양입니다. 올림픽이나 끝나고 할 일이지, 어린 선수들 보기 민망합니다. 아마 파벌주의, 짬짜미, 줄세우기 따위의 부조리를 따지자면 그곳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입니다.
< 곽병찬 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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