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사라지면, 찌라시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지 40여일 동안 ‘김정은 이상설’을 실어 나르는 찌라시가 넘쳐났다.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에 김정은이 불참한 것을 ‘권력이상설’의 근거로 드는 전문가도 있었다. 과연 근거가 있을까? 지금까지 최고지도자는 반드시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진 않았다. 김정일의 경우, 불참한 적이 적지 않다. 참석을 권력 행사로 보고, 불참을 권력 이상의 근거로 보는 시각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북한 붕괴론을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권력 이상을 추측한다. 그러나 북한 정보에 대한 판단은 그 정도로 허접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의 공식 매체에 대한 징후적 독해, 주변국과의 정보 공유, 그리고 기술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이상 징후가 없다’고 판단한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궤변을 말하는 시대가 왔다. 예를 들어 인천에 온 북한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그럴 경우 한국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면 김정은이 남쪽 대표를 만나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 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그리고 당 고위직이 함께 북한을 방문하면, 김정은 면담이 100% 가능하다. 장담한다. 다만 우리 정부가 그럴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현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김정은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평양 북방 모처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왜 저 말은 믿지 않는가? 김정은 제1비서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북한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방송을 내보낸 바 있다. 그래서 다리 수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개인숭배 체제에서 지도자가 목발을 짚고, 혹은 깁스를 한 채로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임에도 그는 나타났다. 그는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권력 공백으로 이어질 정도의 건강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찌라시가 난무할 때마다, ‘접촉 제로’인 남북관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얼마 전 평양에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평양에 주재하는 중국의 신화통신과 일본의 교도통신은 곧바로 ‘평온한 평양 시내의 일상’을 전했다. 우리는 현재 평양에 통신사도, 정부 관계자도, 기업인도, 하물며, 인도적 지원단체도 없다. 평양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 수 있을 만한 아무런 접촉이 없는 현실,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북한 이상설은 또한 무능한 대북정책의 핑계이다. 삐라 문제를 보자. 올해 2월 남북 고위급 회담의 핵심 합의가 바로 ‘비방 중상 금지’다. 그러나 보수단체가 백령도에서 삐라를 날리면서, 남북관계는 대결 국면으로 전환했다. 북한은 최근에도 삐라를 살포하면, 군사적으로 공격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이 아니라, 예고된 충돌이다. 총질을 한 북한이 이상하다고 말하기 전에, 뻔히 그럴 줄 알면서 삐라를 보내는 것이 정상인가? 전쟁을 각오하고, 심리전을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을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부는 말한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이버 망명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그런 말은 또 얼마나 낯부끄러운가?
남북관계는 상호관계다. 거울 앞에 서 보면,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다. 웃어봐라. 그러면 거울 속 사람도 웃는다. 주먹을 들면 마찬가지로 그도 따라한다. 거울 앞에서 주먹을 들고, 욕을 하면서, 왜 거울 속의 사람이 웃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당신, 그러는 당신이 참으로 이상할 뿐이다.
<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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