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디트리히 겐셔는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독일의 외무장관을 지낸 전설적인 정치가다. 사민당 헬무트 슈미트 정부에서 8년, 기민당 헬무트 콜 정부에서 10년간 활약했다. 겐셔가 이렇게 유럽 최장수 외무장관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표였던 자민당이 연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1949년 서독이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65년 동안 최장기 집권당이 소수당인 자민당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40%대의 득표율을 가진 거대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에서 5~10%의 득표율을 가진 자민당은 늘 캐스팅보트 구실을 했고, 이들과 번갈아 연합정부를 구성하며 무려 50년 가까이 집권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민당이 한국에 있었다면 집권은커녕 정당으로서 존재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사실이다. 지난 65년 동안 자민당은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자민당 의원은 전원이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 의원이었다.
오늘날 한국 정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의’(representation) 위기다. 한국 정치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선거제도가 문제다. 지역구에서 다수 득표자 1인을 뽑는 단순 소선거구제는 민의를 왜곡하는 악명 높은 제도다. 생각해보라.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균 투표율을 60%, 당선 득표율을 40%로 가정해보면, 전체 유권자 대비 당선자가 얻는 득표는 25% 정도에 불과하다. 당선자는 25%의 득표를 가지고 100%의 국민을 대의한다. 이처럼 한국 정치는 1/4 대의정치다. 나머지 3/4 국민의 의사는 무시된다. 그러니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여기서 자라난 것이 현재의 과두정치 체제다. 한국의 거대 양당은 1/4 대의정치, 승자독식 정치, 민의왜곡 정치의 최대 수혜자다. 이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선거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반영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기권하거나 최악의 정당을 저지하기 위한 ‘차악투표’를 한다. 그 수혜는 또다시 거대 양당한테 돌아가고, 대의의 왜곡은 또 한번 심화한다. 이런 악순환이 한국 정치 위기의 본질이다.
사실 한국 정치의 기본구도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경쟁도, 우파와 좌파의 대결도 아니다. 그것은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마치 지금의 질서가 공정한 경쟁의 결과인 양 보이기 위해 꾸며낸 ‘거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의 본질은 여야로 불리는 두 기득권 세력이 결탁하여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과두정치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과두지배세력과 미래의 개혁세력 사이에 있다. 야당은 한국 정치의 을이 아니라 영원한 갑이다. 여야의 차이는 권력을 6:4로 분점한 갑인가, 4:6으로 분점한 갑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단순 소선거구제가 낳은 과두정치의 폐해는 크다. 대의의 왜곡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무관심과 무력감을 심화시키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의제를 대변할 정치세력의 등장을 원천봉쇄한다. 따라서 현재의 과두정치 아래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
과두정치를 끝내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다. 변화의 첫걸음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대의할 수 있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답이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 전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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