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 자서전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자서전은 어김없이 소설이다’ ‘기억을 잃어버렸거나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 ‘자서전은 마지막회분만 남긴 시리즈 형태의 부음 기사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대한 이런 촌철살인의 경구들은 특히 유명 정치인들의 경우 더 공감을 자아낸다. ‘공’은 부풀리고 ‘과’는 숨기는 식상한 자서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그나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나의 인생>이 225만부가 넘게 팔린 것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사생활을 나름대로 솔직히 털어놓은 덕분이다.
“인간의 기억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른 과거의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폰 브로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초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맨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사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 시기는 역대 대통령들의 예에 비춰보면 무척 이른 편이다. 시기적으로도 ‘4자방’ 국정조사 문제 등으로 매우 미묘한 시점이다. 굳이 이 시점에서 회고록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말 그대로 회고록이 ‘현재의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 과정, 재임 기간 동안의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둔 ‘보험 들기’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널려 있다. 이런 내용들이 ‘비화’ 중심으로 소상히 담긴다면 ‘MB 자서전’은 아마 클린턴 자서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자서전에 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과거 수집했던 박근혜 엑스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도 동시에 나온다. 청와대를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이 느껴진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살아 있는 권력을 움직이려는 죽은 권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회고록을 4자방 사업 변호 등 ‘과거의 왜곡’ 수단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회고록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교묘한 정치적 행보인 셈이다. 따라서 회고록이 내년 초에 꼭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떠한 삶이든 내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이 전 대통령만큼 재임 기간 ‘수치스러운 일’이 많았던 전직 대통령도 근래에 흔치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내곡동 사저 땅 문제에 이르기까지 반성하고 참회할 내용이 많다. “만약 내가 자서전을 쓰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것”이라는 위트 넘치는 말을 한 작가도 있지만, 진실을 제대로 기록하기로 치면 이 전 대통령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은 항목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내용을 언급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책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독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을 어여삐 봐줄 먼 훗날 역사 기록자를 위해 주절대는 한 남자의 소리일 뿐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 자서전에 대한 <뉴욕 타임스> 서평의 일부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경제위기 극복이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니 하는 자신의 ‘치적 자랑’에 그친다면 장차 나올 서평도 이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펴낸 바 있다. 이번 회고록에 진실을 담지 않을 요량이라면 ‘자서전 속편’ 제목은 아예 <진실은 없다>로 정하는 것은 어떨지. ‘미리 쓰는 서평’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지시는가? 그렇다면 이런 예상 서평이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한번 제대로 된 회고록을 써보시기 바란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대한 이런 촌철살인의 경구들은 특히 유명 정치인들의 경우 더 공감을 자아낸다. ‘공’은 부풀리고 ‘과’는 숨기는 식상한 자서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그나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나의 인생>이 225만부가 넘게 팔린 것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사생활을 나름대로 솔직히 털어놓은 덕분이다.
“인간의 기억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른 과거의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폰 브로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초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맨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사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 시기는 역대 대통령들의 예에 비춰보면 무척 이른 편이다. 시기적으로도 ‘4자방’ 국정조사 문제 등으로 매우 미묘한 시점이다. 굳이 이 시점에서 회고록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말 그대로 회고록이 ‘현재의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 과정, 재임 기간 동안의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둔 ‘보험 들기’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널려 있다. 이런 내용들이 ‘비화’ 중심으로 소상히 담긴다면 ‘MB 자서전’은 아마 클린턴 자서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자서전에 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과거 수집했던 박근혜 엑스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도 동시에 나온다. 청와대를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이 느껴진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살아 있는 권력을 움직이려는 죽은 권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회고록을 4자방 사업 변호 등 ‘과거의 왜곡’ 수단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회고록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교묘한 정치적 행보인 셈이다. 따라서 회고록이 내년 초에 꼭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떠한 삶이든 내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이 전 대통령만큼 재임 기간 ‘수치스러운 일’이 많았던 전직 대통령도 근래에 흔치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내곡동 사저 땅 문제에 이르기까지 반성하고 참회할 내용이 많다. “만약 내가 자서전을 쓰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것”이라는 위트 넘치는 말을 한 작가도 있지만, 진실을 제대로 기록하기로 치면 이 전 대통령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은 항목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내용을 언급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책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독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을 어여삐 봐줄 먼 훗날 역사 기록자를 위해 주절대는 한 남자의 소리일 뿐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 자서전에 대한 <뉴욕 타임스> 서평의 일부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경제위기 극복이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니 하는 자신의 ‘치적 자랑’에 그친다면 장차 나올 서평도 이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펴낸 바 있다. 이번 회고록에 진실을 담지 않을 요량이라면 ‘자서전 속편’ 제목은 아예 <진실은 없다>로 정하는 것은 어떨지. ‘미리 쓰는 서평’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지시는가? 그렇다면 이런 예상 서평이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한번 제대로 된 회고록을 써보시기 바란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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