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나라 망신 예고한 첫 단추

● 칼럼 2015. 6. 12. 16:40 Posted by SisaHan

예로부터 위신과 체통을 중시하는 양반들의 나라 한국의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단 한명의 여행객이 묻혀 들여온 괴 바이러스가 온통 나라를 뒤흔들어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된 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메르스라는 중동산 호흡기증후군 신드롬이 중증이다.


거리도 먼 이방에 불청객으로 도착한지 불과 보름여만에 본고장인 사우디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유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불안의 여파가 얼마나 심각한지, 특히 자존심 강하기로는 적수가 없을 정도인 북한 마저 열감지기 등 방역장비를 도와달라고 남쪽에 황급히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 파장은 정말 크다. 졸지에 한국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입국을 꺼려하는 처지가 되고, 나라마다 자국민의 한국행을 말리는 상황이 됐다. 메르스가 상시 유행하는 중동의 나라들이 ‘한국행을 삼가라’는 여행경고를 발했다는 소식에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휴대폰에, 자동차에, K-pop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을 주름잡아 잘 사는 경제강국으로 소문나며 콧대가 높아졌던 한국이 하루 아침에 보건·의료 후진국으로 급전직하 추락해 버렸으니, 황당한 경우가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


단지 괴질 감염에 대한 불안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적인 여파가 빠르고 넓게 번져 후유증도 걱정이다. 상가와 각종 모임, 문화·연예·스포츠 행사들이 텅텅비고 매출이 반토막 나 모두들 울상이란다. 최초 진원지 평택은 폭탄을 맞은 듯 철시상태이고, 아예 한 마을이 차단과 동결로 고립된 곳도 있다. 표현 그대로 전쟁과도 같은 준전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메르스가 그처럼 공포의 살인괴질은 아니라고 말한다. 치사율이 40%라는 말이 있지만, 사우디의 경우 4만명 발병에도 사망자는 1%에 불과한 4백명에 그쳤을 만큼 심각하지 않고, 심지어 독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경험담도 나오고 있다. 실제보다 과장, 과잉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별 것도 아닐 법 한데 왜 이렇게 한국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는 것인가.


모국의 언론들, 세계적인 뉴스들을 종합하면, 한국정부의 무능과 무개념에 지탄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최초 발병 환자를 병원측이 신고했음에도 반응이 없었다는 보건당국, 뒤늦게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허겁지겁 나섰지만, 치밀하지도 조직적이지도 못해 적절하고 철저한 방제와 차단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초기대응 실패에 후속대처도 졸속이었고, 특히 ‘삼성’을 의식한 비밀주의로 감염정보를 쉬쉬하며 화를 키웠다는 분석들이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쳐 참사를 키운 과오를 덮기에 변명으로 지샌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라는 중론이다. 세계적인 난리법석 속에서도 유일하게 ‘사망 제로’를 기록했던 사스 당시 철통방역 노하우의 기억상실도 지적한다.


‘골든타임’의 중차대함이란, 어디 세월호나 메르스의 경우 뿐이랴. 골든타임이 인간지사 세상만사를 좌우한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되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은 첫 단추를 잘 못 끼워 고생하는 것과 같고, 한 번 뱉은 거짓을 참말로 위장하기 위해 일곱가지 거짓말을 동원한다는 루터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실수를 만회 한답시고 엉뚱하게 자치단체의 발빠른 대처에 시비를 거는 졸렬함이 그렇다. 준전시라며 팔을 걷어부친 서울시장·지사들을 칭찬은커녕 나무랄 이유가 무엇인가. 단 한명의 메르스 감염자를 경시했다가 나라가 뒤흔들리는 꼴이란, 무장공비 한명 놓쳐 국방불안을 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준전시’로 보아 박멸에 나섬은 너무 당연하다. 청와대가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비겁한 리더쉽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어, 역시 단추가 잘 못 끼워진 탓에서 근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정보·군기관의 댓글로, 또 비밀 선거캠프와 남북대화록 유출 등으로 권력을 취한 것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사죄와 개과천선의 골든타임을 뭉개고 덮으려다 보니 집권 내내 크고 작은 불상사가 잉태되어, 끊임없이 국민을 괴롭히고 나라를 추락시킨다는 이야기다. 이 참에 국민들도 첫 단추와 골든타임 무시의 실수를 되새길 터이니 그나마 작은 수확일지 모르겠다.
<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