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에 임명장을 받으러 청와대에 간 방위사업청장 노대래씨. 전임 장수만 방사청장이 비리로 3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후유증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 후에도 신임 청장을 상대로 물경 2시간30분 동안 잔소리를 퍼부었다.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국방예산 20% 삭감해도 된다”는 대통령의 말이 이때도 나왔다. 모든 무기도입 사업에서 일률적으로 예산을 20% 이상 삭감하라는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노 청장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은 분량이 복사용지 앞뒤로 빼곡히 3장이 넘었다. 임명 첫날부터 군에 함부로 돈을 주지 말라는 이 대통령의 지침을 단단히 받고 나온 노 청장은 정신이 얼얼했는가 보다.
얼마 후 영종도의 한 호텔에서 청와대, 국방부, 방사청, 군, 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방위산업 합동 워크숍에서 노 청장은 “군은 무능한 집단이고 업체는 부패한 집단이다”라고 선언하며 모든 무기도입 사업을 방사청이 주도할 뜻을 명확히 했다. 모든 국방사업에서 일률적인 예산삭감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4년이 지난 지금. 방산비리 합동조사단이 터뜨리는 각종 무기도입 비리는 전부 이 대통령이 돈줄을 막아버렸던 시절에 저질러졌던 사업들이다. 방사청을 앞세워 방산 비리를 척결한다며 군의 숨통을 눌러버리니까 군은 다른 살길을 찾아 나섰다. 성능이 낮은 저질 무기라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식으로 정책을 속속 변경한 것이다. 통영함의 음파탐지기는 애초 120억원가량 비용이 예상되었고 협상을 잘하더라도 70억~9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다.
그러나 달랑 40여억원을 배정받자 유럽 전문 업체와의 협상을 포기하고 미국의 이름도 없는 불량 업체와 41억원에 계약을 했다. 돈에 장비의 성능을 맞춘 결과 엉터리 부실 장비가 들어왔다. 영국으로부터 도입되는 해상작전헬기는 대잠수함 작전능력이 없는 헬기였으나 경쟁 기종인 미국제보다 싸다는 이유로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이 요구하는 작전성능 중에 대잠수함 작전 기준이 하향 조정되었다. 핵심 작전의 요구 성능이 하향 조정되는 건 해군의 권한으로도 안 되는 중요한 정책결정이다. 정치권력과 합참의 고위층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단지 비리로 적발된 사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군의 무기도입 전부가 일제히 부실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게 문제다.
국방예산이 아까우면 무기소요, 즉 사업 자체를 재검토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방만한 군의 무기소요는 놔둔 채 예산만 줄이는 방식으로 국방을 관리하니까 실체도 없는 페이퍼컴퍼니, 즉 엉터리 유령회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각 군과 사업부서마다 하나씩 사업을 꿰차려고 하니까 엉터리 장비를 납품하고 튀는 한탕주의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하여 한국군의 전 무기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양상으로 간 것이다. 이것이 지난 보수정권 7년간 약 70조원을 무기도입에 쏟아붓고도 군의 작전능력이 개선되지 않은 핵심 이유다. 덤으로 지난 20년간 꾸준히 축적해온 국내 방위산업의 연구개발 기반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무기소요는 늘어나는데 예산이 줄어든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이 부실 덩어리로 전락하여 거대한 국가적 낭비를 형성한다. 4대강과 자원외교에 이은 가장 끔찍한 국가 부실은 다름 아닌 국방이다. 이에 대해 아무도 항변할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이거 사라, 저거 사라”는 지시를 하는데 누가 그 부당함을 말하겠는가?
무기는 많지만 각종 엉터리 장비로 무장한 한국군의 위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방만한 국방이 디폴트(지급불능) 사태로 가는 데 앞으로 3년이면 충분하다. 이런 정치권력이 방산비리 주범이 아니라면 무엇이 주범인가?
< 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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