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명이 행복하고 1명이 불행할 때 자본주의에 물들은 사회는 그 불쌍한 1명을 희생 제물로 삼는다.
사고가 일어나고 적어도 한 번에 몇 백명이 희생당해야 사회가 조금 술렁인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 현재까지 적은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가운데 파장이 커지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1명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들의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작은 교회 목회를 하다보면 문제 가운데 있는 1명의 성도 때문에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상상해 본다. 1명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많은 성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1명 정도 보이지 않아도 무시하고 설교를 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고민하고 싶지않고 괜한 일에 말려 귀찮은 일을 해야하고 싶지 않다. 1명 정도는 무시해도 교회는 굴러간다.
여전히 성실히 봉사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고, 사랑의 교제가 있으며 우리들은 화목하고 교회는 안전하다.
다수결의 원칙이 익숙한 사회와 교회에서 우리는 1명의 불행을 돕기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일들은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소수의 부와 권력을 위해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죽음을 강요하는 지배자가 많고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성경은 99마리의 양들을 들판에 버려두고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예수님의 목양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참 바보같은 결정을 하신 것이다. 99마리를 떠나 1마리를 위해 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위험과 희생을 선택하신 것이다.
특정한 한 마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 그렇게 백 마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회가 이루어지고, 정치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면 아마도 목사의 숫자와 정치가의 숫자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99마리에 속해 있으면서 잃어버린 1마리를 위해 희생하는 목회를 따라야 한다면 아마도 성도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을 걸으셨다. 리더는 희생으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그 길을 몸소 보여 주시고 제시해 주셨고,
이제 이 땅에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99마리의 안정을 떠나 잃어버린 1마리를 찾아 나서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명령에 순종한 분들에 의해 신앙은 전해지고 이어져 우리에게로 왔다.
1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기듯 백성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이 허락된 것이다.
우리들의 기쁘고 풍성한 축제 시간에도 예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을 바라보고 계신다.
< 임함남 목사 - 베다니침례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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