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난을 싫어한다. 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죽도록 싫어한다. 그러나 목사가 된지 이제 30년이 넘어서야 고난이라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직도 고난이 싫으면서도 그 고난의 유익을 점점 알게 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가 남긴 유명한 저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합니다.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정말 고통당할 때 지금까지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난이 나에게 유익하도록 반응할 수 있을까?
시 119:71편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편의 저자도 아마 많은 고통과 고난을 당했나 보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있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니 참으로 귀한 진리를 깨달았다. 나도 이 시편처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고난을 향하여 용감하게 덤벼 보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난이 다가올 때 웃음을 띠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고난에 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도 고난이 임하면 긴장한다. 웃음이 사라진다. 잠을 잘 수가 없다. 밥맛이 없다.
성경을 읽을수록, 성경 속의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들마다 고난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많은 유혹과 시험의 과정을 마친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수고의 떡과 수고의 물을 먹고 마신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며 회개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고난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 임을 알게 된다. 사람은 고난이 없으면 성숙해지지 않나보다. 고난이 없으면 자신을 돌아보지 않나 보다. 고난이 없으면 겸손해지지 않나보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나보다. 아마 나에게도 그러한 고난이 없었다면 잘못 되었을지 모른다.
아직도 고난과 고통은 싫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그 고난을 유익이라고 믿고 그 고난에 담대히 도전하려고 오기를 부려본다. 롬 8:35절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바울이 말하는 이 힘든 일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바울은 계속 외치고 있다.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라고 외쳤다. 그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있다. 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은혜로운 삶을 살아왔다. 내가 싫어하는 그 어려움들을 잘 감당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아쉬움과 후회스러운 일들도 있지만 그러나 나로 하여금 그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 강성철 목사 - 우리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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