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기쁨과 감격으로만 맞이하지 못한 현실이 참 비통하다. 조국의 분단과 치유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들 때문만은 아니다. 외형이 화려해진 성장과 풍요의 이면에, 잊혀지고 구석에 쳐박힌 ‘민족정기’의 허상이, 그리고 비정상이 정상처럼 위세를 떨치는 정신상태와 나라 현실이 가슴 아파서다.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정상이다. 수고와 노력에 상응한 댓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합리적이고 투명하며 공평하고 정당함을 뜻한다. 혼신을 다해 일했는데 거의 급여를 못받는다면,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일개 회사에서 일하거나 고생한 것도 아니요, 목숨을 바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는데 홀대를 당한다면 그게 정상일까. 든든한 국가체제 아래서 국방에 생사를 건 것도 아니다. 나라조차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생명과 재산과 가족을 모두 포기하고 송두리째 쏟아부어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투신한 이들을 외면하고, 그 후손들을 박대하는 현실이 정상적이며, 과연 민족정기가 바로 선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1962년부터 국가보훈이 시작됐으니, 자신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승만 정권은 독립투사들 예우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 후의 독재·군사정권들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유공자는 우대했어도 독립유공자는 소홀히 해, 스스로 친일의 피가 흘러 제 발이 저렸는지 모른다. 지금도 유관순 열사 추모제에는 대통령 화환이 보내지지 않는데 국회의원 처가 장례에까지 대통령 꽃이 장식된다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친일파와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은 거리를 떵떵거리는데 독립유공자 자손들은 거리를 헤맨다” 지난 12일 일본대사관 앞 정대협 수요집회에서 분신한 독립운동가 후손 최현열 옹(80)이 지녔던 글의 일부다. 그의 말 그대로 애국지사의 후예들은 권력도 재산도, 심지어 투쟁의 족적마저도, 조상이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보훈대상자로 선정 자체가 힘겹고, 설령 선정된다 해도 빈약한 지원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화(禍)가 후대까지 미쳐 ‘3대가 망한다’는 참담한 속설이 나돈다는 한탄인가.
그러니 혹시라도 다시 나라가 망한다면, 그 때의 광복은 전혀 기대조차 할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가 광복운동에 나서겠나, 후손까지 멸문의 화가 미친다는데 어떤 정신나간 부모가 자식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롭게 투쟁하라’고 가르치며, 자식들인들 감히 투쟁에 나서겠는가 말이다.
엊그제 40주기를 맞은 장준하 선생의 인생행로는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해준다. 광복군 장교로 조국을 수복하겠다며 김준엽 전 고대총장 등과 함께 미군 특수부대 OSS훈련을 받기도 했던 그는 광복을 위해 싸우던 몸을 해방 이후에는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정권에 의한 핍박과 죽임으로 마감됐다.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비극은 가족에게 이어져 그의 노모와 자녀는 극심한 빈곤과 질시에 눈물흘리며 살아왔다고 한다. 유족연금 월 60만원의 생계비로.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영화 ‘암살’이 부각시킨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의 이야기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무장 독립투쟁의 전설적 인물이었다.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의 수탈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의 주요 사건 배후에 늘 그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가 김구 선생에게 6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을 때 김원봉에게는 100만원을 걸었다는 것은 그의 비중을 짐작케 한다.
광복군 부사령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장을 지낸 그가 해방 조국에서 영웅대접을 받기는커녕, 체포와 고문을 당했다는 것은 충격이다. 더구나 일제에 부역하던 악질 고등계 형사출신 노덕술에게 붙잡혀 고문의 수모를 당했다니, 왕년에 왜놈 때려잡던 호랑이가 국권을 되찾은 조국에서 그 역겨운 일제의 수하 놈에게 능멸을 당하는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애국지사 모독이라는 여론의 덕으로 겨우 풀려난 그가 사흘 밤낮을 통곡하며 “여기선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라고 통탄했다니, 이승만 정권이 그를 북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가 북에서도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숙청되고 말아, 오직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을 뿐인 독립영웅이 남에서도 북에서도 외면당한 말로는 정말 서글프다.
국가보훈법에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한다는 보훈 예우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료가 빈약하다거나, 다른 국가유공자와 형평을 따져야 한다며 미적대고, 조상이 월북했다 해서 퇴짜를 놓는 비운에 눈물 흘린다. 일제하 독립투쟁과 국가유공 수준을 어떻게 비교한다는 것인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자발적 월북이 아닌 한, 이미 판명 난 체제 우위의 대국적 입장에서 순수 민족주의 애국자들을 예우하는 아량 정도야 보일 수 있는 게 아닐지.
조선의 인조는 임란의 공신인 이원익이 은퇴하여 가난하게 사는 것을 알고 특별하사금을 내리며 극구 사양하는 그에게 이렇게 명했다 한다 “그대는 청백리이고 국가 공로자인데 궁핍하게 사는 것을 만일 백성들이 안다면 왕인 나를 얼마나 원망할 것이며, 후세에 누가 청백리가 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 하겠는가? 그래도 궁핍을 고집한다면 후인들의 교육을 잘못시킨 죄와, 왕명을 어긴 죄까지 물을 것이다” 국가보훈의 의의를 인조 임금이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 김종천 편집인 >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고] 남북관계, 착각과 착시 (0) | 2015.09.18 |
---|---|
[한마당] 공인의 염치 (0) | 2015.09.12 |
[1500자 칼럼] 소나기 (0) | 2015.08.28 |
[1500자 칼럼] 왜 역사정립이 중요한가 (0) | 2015.08.21 |
[칼럼] 중·일 역사 왜곡 추종하는 ‘현대판 매국’ (0) | 2015.08.21 |
[사설] 광복 70년을 부끄럽게 하는 ‘한자 병기’ (0) | 2015.08.21 |
[사설] 출렁이는 남북관계, 강화해야 할 위기관리 (0) | 2015.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