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廉恥)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이라고 국어사전이 정의한다. 한자의 뜻으로는 청렴(淸廉)하고 수치(羞恥)를 아는 마음이다. 따라서 파렴치(破廉恥), 혹은 몰염치(沒廉恥), 후안무치(厚顔無恥)등은 모두 그 반대의 뜻으로 잘못을 범하고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요사이 공인들, 특히 정치와 정치인들의 처신을 보면서 그 ‘염치’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한다. 정치란 원래 ‘염치 좋은’ 사람들의 영역이라고는 말하지만, 그래도 수준이나 양심은 가려야 할 텐데‥ 참 염치없는 인물, 염치없는 짓거리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몰염치 혹은 파렴치의 사례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선거 때 호언장담하던 공약들을 당선 되자마자 내팽개치는 것부터, 온갖 이권개입과 부정청탁, 품위와는 거리가 먼 구설수들, 심지어 성범죄에, 역사부정과 이념몰이, 나아가 오리발을 내밀고 억지와 변명으로 호도하는 안면 몰수까지, 국민은 안중에 없이 오직 이기(利己)와 권력추종 뿐이다.
가령 국토를 망가뜨리고 극심한 오염까지 초래한 4대강 사업을 여전히 잘했다고 주장하는 낯두꺼운 인물들, 자원외교랍시고 국가재정을 자기네 쌈짓돈처럼 헛뿌린 망나니들이 지금도 건재해 ‘염치도 없이’의 분통을 자아낸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엄연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소리 치고 덮어씌우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는 딴청을 부리는 철면피, 국정원 댓글공작을 얼버무리고 되레 국가안보를 위해 한 일이라고 둘러대는 뻔뻔함, 당시 일선 경찰의 수사를 방해한 혐의가 짙은 전 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국회의원 출마 운운 나대는 반면, 수사의 정도를 걸으려던 하급 지휘자를 모해니 무고라며 법정에 세우는 희한한 반전 드라마도 참 ‘염치없는’ 목불인견의 모양새 들이다.
그런 몰염치의 반복이 장관이나 고위 권력수장들의 부도덕하고 후패한 흠결들을 오히려 필수품처럼 만들어 나라의 수준과 공직자들의 인품관·가치관을 오도하고 추락시킨 ‘불감증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그러더니 엊그제는 선거 주무장관이 “여당 필승”을 외치고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버티는 당돌함을 보이기에 이른다. 정상대화록을 유세 공개하고선 ‘찌라시’에서 봤다고 둘러댔던 그 당의 대표라는 이는 “‘승리’라고는 했어도 ‘당 이름’은 말 안했다”고 다시 코미디 같은 해명을 내놔 후안무치 그룹 불변의 본성을 강조해 주었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빈말과 궤변을 입에 달고 산다고들 하되, 최소한의 ‘염치와 체통’은 지키고 보인 다음에야 소위 ‘국격’을 논하는 게 합당하지 않겠는가.
역사에서 염치의 원조를 찾으면 엿 중국 초나라 항우의 고사가 거론된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항우본기’에는 유방과 천하를 다툰 걸출한 인물인 항우의 최후를 그린 대목이 나온다. 항우는 한때 유방의 목숨을 손에 쥐기도 했으나, 악행으로 민심을 잃은 데다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처지가 역전돼 한나라 유방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전쟁 막바지 잇단 패퇴로 군사를 다 잃고 쫓기던 그가 겨우 20여 기병과 함께 오강에 다다랐을 때였다.
오강의 정장이 배를 강나루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권했다. “강동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천 리요, 백성이 수십만 명에 이르니 그곳 또한 족히 왕업을 이룰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 할 것입니다.”
어쩌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호기였으나, 항우는 고개를 저으며 “이미 강동의 젊은이 8천 명과 함께 전쟁에 나가 그들 모두를 잃었는데 강동의 그들 부모형제들을 무슨 면목(염치)으로 대하겠는가”라고 사양한다. 이어 “설사 그들이 책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위인다운 면모를 되살린다. 그리고 그는 충직한 정장에게 “내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어 후덕한 그대에게 주겠노라.”라며 자신의 천리마를 건네주고, 적장 가운데 자신의 부하였던 인물이 보이자 ”유방이 나에게 천금을 걸었다니 내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리라“라며 머리를 거둬가도록 하고는 자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항우는 원래 항복해 온 진나라 군사 20만명을 생매장하고 진의 황제 자영과 초나라 회왕을 죽이는 등 잔학했으며 충언과 지략으로 보필하던 책사 범증을 내치는 등 오만한 무장이었다. 그런데 생을 마감하는 죽음 앞에서 그는 비로소 면목(面目)을 토로한다. 면목은 글자 그대로 ‘낯짝과 눈’ 즉 얼굴의 생김새를 뜻하니, ‘면목이 없다’는 말은 스스로 얼굴 들기에 민망하여 잘못을 뉘우치는 양심과 회심(悔心·回心)의 모습인 것이다.
염치와 면목은 체통 혹은 체면, 나아가 예의나 명분과도 통하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명분일진대, 염치나 명분이 없는 정치와 정치인들이 횡행한다면 나라 꼴도, 수준도 당연 한심스러울 밖에 없다.
다시 중국의 고전을 인용한다.
친구간의 깊은 우정을 비유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자(管子)의 목민(牧民)편에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이 나온다. ‘예 의 염 치’(禮義廉恥)가 바로 그것으로, ‘사유(四維)’라고도 했다.
그런데 사유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뒤집어지고, 모두 없으면 파멸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곧 ‘예의염치’는 나라를 존재케 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 덕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파렴치’가 판을 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말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 공인들은 최소한의 염치는 간직하고 봉직해야 한다는 엄중한 가르침이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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