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천재지변의 나라다. 지진과 화산은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속해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해마다 대형 태풍이 적어도 한 두번씩은 휩쓸고 지나간다. 태평양의 격랑을 마치 병풍처럼 3천km 길이로 길게 막아주고 있어서 한반도에는 방파제 구실을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육지와 바다 모두의 재해가 끊이지 않는 불안의 연속이다.
일본이 역사상 단 한번의 본토 침공을 당했다는 13세기 원나라의 공세를 무위로 돌린 것은 태풍이었다. 그래서 ‘신풍’(神風: 카미가제)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아마 그 때의 태풍이 나라에 덕이 된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는 그 신풍이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자살폭탄으로 돌변해 버렸지만….


일본의 침략근성은 그처럼 불안한 국토를 벗어나 안전지대를 갈망하는 심리와 생태적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려조 당시만 515번이나 침입해 온 것을 비롯해 삼국시대 이후 714번이나 한반도를 침략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외지선망과 팽창습벽이 습관화, 체질화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빈번한 침략을 조선 사람들은 용케도 막아내고 견디면서도 고려 말과 조선 초 3차례의 대마도 정벌 외에는 일본 본토에 대한 공략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참으로 평화민족이요 영토에 대한 욕심도 없는 선량한 족속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평화와 선량에만 머물다 결국은 714번째 침략에 나라와 민족이 절단나는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여지껏 독도를 지키기에 애를 먹고 있고-.


그런 체질적 침략근성과 ‘팽창 DNA’를 지닌 일본이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의 금지선을 넘어서고 있어서 주변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A급 전범의 후손답게, 극우성향의 아베가 총리가 된 뒤 일본을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에 전력질주 하고 있다. 마침내 지난 19일 새벽, 반대함성에 귀를 막은 아베가 밀어부친 소위 ‘안보법제’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이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자위대의 해외진출에 제동장치가 풀려버렸다. 이제 ‘자위대’가 아닌 ‘일본군대’로 불러야 할 판이다. 아베는 내친 김에 평화헌법 마저 뜯어고치려 한다. ‘팽창’의 법적인 제약을 모두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아베에게 DNA를 물려준 조상들은 어떤 인물들인가. 그의 할아버지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조선 땅에서 인적·물적 전쟁자원 수탈에 총력을 기울이다 미군에 항복문서를 건네고 일본으로 패퇴해 갔다. 하지만 그는 순순히 사라지지 않고 이런 무서운 악담을 늘어놓았다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의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래서 나 아베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만주국에 봉직했고 전시내각 장·차관을 지낸 A급 전범이었다. 그러나 전범재판을 피해 살아남아 나중 총리가 된다. 그가 남긴 업적은 당시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냉전체제에 편입하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을 강행처리, 그 여파로 물러나게 된다. 그는 특히 재임 중 평화헌법 조항을 확대 해석해 자위대의 군비를 확충, 전쟁 잠재력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듣는다.
결국 지금의 아베 총리를 보면 친조부와 외조부 모두의 피가 절절히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그가 절대 사죄하지 않는 이유도 자명해진다. 그리고 ‘나 아베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조부의 호언이 결코 헛된 장담이 아니었음을 이번 안보관련법 강행처리로 손자 아베가 되살려 주었다.


유사시 자위대 투입은 한반도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자위대가 한국 땅을 밟을려면 한국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한국정부는 주장하지만, 그 것은 아전인수의 해석일 뿐이다. 한국군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다. 유사시 미군 장성이 한국군을 통솔하는데, 왜 일본이 한국정부의 동의를 받는가. 미국은 일본군의 해외진출을 가장 적극 환영하는 나라다. 미국이 묵인하면,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은 ‘누워 떡먹기’다. 이미 6.25동란 때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에 진출한 적이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재무장의 빌미로 삼아 온 일본이다.
한국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천황에게 충성 맹세한 만주국 장교출신에 이어 그 딸이 대통령이 된 나라, 일제 식민통치가 근대화의 초석이었다고 외치는 친일파와 뉴라이트 학자들이 활개치는 식민교육의 나라 한국을 아베가 깔보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사·군대위안부 문제 사과요구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현재의 일본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