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여움은 인간을 극도로 어리석게 만들고, 사나운 짐승과 같은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는 노여움의 코에 고리를 끼고 그 턱에 재갈을 먹일 필요가 있다.(삼상20:33) 극도의 노여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노한 마음을 가지고 멸시하는 말을 아무 말없이 겸손히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기를 매우 낮추는 지혜로운 <겸손>이다. “네가 혐의를 받았을 때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 있다. 교회를 치리 하고자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이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악한 죄를 지어 성령을 슬프게 하고 이를 막아 버리면 성령은 그 사람을 떠나고, 그를 위해 애써 주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부리신(일하는)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한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사악한 생각을 하거나 사악한 길로 계속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신을 기만하는데 불과하다는 점을 유의하자. 죄에 대해 진정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고 죄에 대한 진정한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금식이 아니고 가장된 신앙인의 거짓 금식기도가 되지 않을 까요?


신앙인의 과시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리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신앙의 본질>없이는 어떠한 기도도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 가족과 친족이 몰락하는 데도 돌아보지 아니하면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다.(딤전5:8) 우리는 불쌍한 청원자가 우리를 찾을 때 그를 회피하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또한 자비와 동정의 대상이 나타날 때 딴전을 피워서도 안된다. 그들은 우리의 살중의 살 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잔악한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의 자비로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베풀어 주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일을 우리 자신의 규범으로 정해야 된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하는 것” 일 줄 믿는다. 참된 지혜는 그 행하는 일로써 알려진다. 즉 <선행>은 전 인격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참된 지혜는 영혼과 성격이 온유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야고보서3:13) 다른 사람의 노함을 끈기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지혜가 있음의 훌륭한 증거가 된다. <지혜는 온유함을 낳고 온유함은 지혜를 더해준다> 사역자들의 사역이 실패로 끝나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교우들 모두의 실패가 되고 그 손실은 교인들에게 돌아 갈 것이다.


주님! 우리는 죄악에 있어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어야 되지만 진리를 깨닫는데 있어서는 성인으로 성장하여야 하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를 지나고 청년과 같은 상태를 벗어나 성인이 된 상태의 단계에 이르게 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로 인해 주어진 생명을 유지해 주는 음식이며 자양분이다. 우리는 새로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도록 해야 될 줄 믿는다.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 해야하는 또 하나의 의무이다. 사역자들은 교인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교인들이 사역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할수록 교인들은 그들의 사역에서 얻는 유익이 많아 질 것이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가르쳐 주는 사역자들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여 가르쳐 주시겠지만, 우리는 그들로 용기있고, 현명하며, 열성적이고, 사역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한다. 또한 사역자들이 유혹받을 때에 물리칠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된다. 그렇게 함으로 사역자들은 모든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선한 양심으로 양들을 위하여 치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큰 목자요 사역자들은 주님께 예속된 목자들인 것이다.


“신앙은 인간들에게 가장 진실한 예의와 훌륭한 교양을 가르쳐 준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 말씀 속에서 자족의 의무를 권고받고 있다.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자를 시기하여 세상의 부를 모으려하는 지나친 욕망의 <죄>, 즉 <탐욕>의 죄를 제압하고 내 마음속에서 왼전히 뿌리를 뽑아 버린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될까! 또한 우리는 현재의 환경에 만족할 줄 알고 현재의 형편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 일까! 환경이 향상되면 인간의 욕망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에 탐욕의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환경과 욕망을 억제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제단이 되시며, 제물도 되신 주님 앞에 늘 깨어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주 하나님의 자비에 내 자신을 맡기는 신앙생활을 하자! 이 세상에서 나의 모습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아서 이리 저리로 흔들리며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나의 영혼은 <배>와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튼튼하고 견고한 <닻>을 필요로 한다. 바로 <복음>이 주는 소망이 나와 우리의 <닻>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주는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하며, 확실하고, 변함이 없으며, 은혜를 통해서 주어진 아름다운 소망이 되는 것이다. 복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만큼 견고하고, 이 소망은 영원한 반석이신 주 예수님 에게서 내려진 <닻>이다. 왕중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신자들의 예표요 첫 열매이시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