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힘들고 어려울 때 생각나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신다. 그 분은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 자신이 들어갈 관을 준비하시고 그 위에 아내를 통하여 이렇게 글을 써 주길 당부하셨다. ‘십자가지도’(十字架之道). 사모님은 흰 무명천에다 빨간 글씨를 정성을 다해 쓰신 뒤 목사님께 보여주셨다. 목사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며 껄껄 웃으시며 “이제 다 되었네.. 내가 주님 부르실 날만 기다리면 되겠네.” 하셨다.


평생 믿음의 외길로만 가셨던 그 목사님께서 준엄하게 가르쳐 주셨던 당부의 말씀이 목회를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조금씩 지쳐갈 때마다, 교인들이 진심을 이해를 해 주지 못하고 종종 변해가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목사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자고로 목회자는 진실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지도’를 평생 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삶이 퍽퍽하고 유혹이 밀려오고 삶에 고통이 밀려올 때 정직하게 십자가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도를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가 변해서는 안될 것이 바로 정직하고 진실되게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속고 속여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보다 십자가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었다. 나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놓치고 살았던 것, 그것이 바로 ‘십자가지도’ 이다.


세상이 급변하면 할수록 교회도 빠르게 세상 발걸음에 장단 맞추어가는 것이 마치 트렌드인양 그렇게 적용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도 적용할 수도 없다. 이제 거슬러 조금 느리고 더딜 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상이나 이적 기적과 같은 현상적인 상황에만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익히는 그 자리에서 바르게 각성하고 깨달아 우리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십자가지도’ 앞에서 되돌아 보아야 한다.
‘십자가’, 나에게 십자가란 무엇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길을 너무나 잊어버리고 살았다. 아니 알면서도 이제 고난의 십자가는 더 이상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지 않고, 능력의 십자가만 필요할 뿐이라고 우리는 외쳐야 한다. 깊이 반성해야 한다. 능력의 십자가는 없다. 다만 죽음의 십자가 밖에 없다.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의 능력이 있을 뿐이다.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되찾아야 한다”라고 외칠 때마다 허공을 향하여 던져지는 공허한 울림 같고 예전에 가졌던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며 나아가겠다는 그 결연한 의지가 목회자들에게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삶의 현실이 너무 찌들려 도리어 이상적인 것을 너머 신비적인 환상에 사로잡히거나 현실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목회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십자가가 어찌 부적이 될 수 있고, 기적이 되었단 말인가? 세상으로부터의 철저한 버림의 상징이다. 버림을 받을 때 택함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진리는 바로 십자가 안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한 가지는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지도’이다. 의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하고 수고가 필요하고 눈물이 필요하다. 이는 무엇보다 목사와 교인들 모두가 사회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정직성을 요구하는 것이 ‘십자가지도’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에 어찌 거짓이 있을 수 있겠으며, 부정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교회여! 다시금 회개하고 돌아오라! 진실로 자신의 거짓과 탐욕과 부정과 어리석음과 야망과 기복에서 돌이켜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붙들라. 거기에 우리의 생명이 있노라! 정직과 진실함으로 돌아오라. 그것이 교회가 살 길이다.

< 박세종 목사 - 토론토 예닮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