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지구촌을 떠나야 하나…”

● 칼럼 2015. 12. 11. 17:58 Posted by SisaHan

밖에 나와 있으면,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조국을 향한 마음이 든든해지며 보고 듣는 것이 편안해져야 하련만, 어찌하여 갈수록 답답하고 안타깝고 불안해지기만 하는가.
세월이 갈수록 조국의 상황이 나아진다면 누가 뭐래도 맘이 편안할 것이다. 아예 잊어버리고 고국미련을 벗어나 현지에 적극 동화되어 버린다면 그 또한 속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둘 다 그렇지 못해서 편치 못한 거다.
한국사람이 유별나다는 흔한 말처럼 이민 땅에 재빨리 스며들지 못해 현지화가 더디고 서툰데다, 애국적 향수는 강해서 자나 깨나 고향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는 민족적 천성들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렇게 안테나를 돌려놓고 귀를 쫑긋해 날마다 듣고 보자 하니, 겉으론 화려해 보이는데 속으론 찢기고 병들고 곪아가는 병색이 깊어져 회복과 치유의 날이 언제려나 요원하기만 하기에 무척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다.


밖에 나와 살아도 고국을 향한 마음은 그저 그 곳에 남은 가족과, 친지와, 모든 이웃과 백성들이, 그리고 우리 네 후손들이 풍요롭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다. 나라가 물질적으로 강성해질 뿐만 아니라, 지식과 문화가 융성하고 창대하여 정신적인 자존감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꿈이다. 비록 작은 나라지만, 영특하고 지혜로운 민족이니 얼마든지 강소국(强小國)으로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국난과 압제를 극복하고 단기간에 이룬 경제와 민주의 기적들, 최고를 떨치는 많은 인재와 기술들이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작고 이른 성공에 환호작약하고 도취해 꿀단지에 빠져든 파리와도 같은,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방향감각을 잃은 어리석은 모양새로 퇴락하고 있지 않은가.


잘 살게 됐다는 지나친 자만과는 거꾸로 문화민족 선비정신의 기개와 민족혼은 날로 퇴색하여 졸렬하고 저급하고 이기적인 싸움만이 치열해진다. 사람들이 완악해져 포용과 상생과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간다. 나라는 백성이 주인이 아니라 권력자가 상전이 되어 부려먹고 다그치려 한다. 나라 안에서 권력을 휘둘러 떵떵대고 기고만장한 것과는 달리 밖으로는 눈치나 보고 끌려 다니는 비굴과 사대근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돈 좀 꿰찬 졸부처럼, 아무리 잘 먹고살며 빈국들에 적선의 눈을 돌려도, 문화·문명의 선진국이라는 선망과 존경의 눈초리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까짓 남이야 뭐라든, 외국의 언론이 무슨 대수냐며 그들 평판에 신경쓰는 것이야 말로 사대적 발상이라고 폄하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통을 중시하고 체면에 사는 한국사람이요 동네에서 나쁜 평판을 들으면 이사를 떠날 정도의 고고한 민족이다.
초고속 정보시대 지구촌에서, 그 것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매체들이 잇달아 추한 꼴을 들먹이는데도, 한국과 한국 사람들은 얼굴을 들고 살 수 있는가. 우리들 자존심은 가만 있어야 할까. 어디로 떠나야 하나?


“민주적 자유를 퇴행시키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여 우려스럽다.” 유력지 뉴욕 타임즈가 사설로 한국의 대통령을 강력 비판한 것은 근래 없던 일이다. 소위 선진국 언론들이 최근 한국의 뒷걸음질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그 강도도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력 주간지 ‘더 네이션’의 기사는 아예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라고 대문짝만한 시위진압 사진과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뉴욕총영사관이 이메일과 전화로 언성까지 높이며 항의했다는 후속 뉴스다. 해당기자는 이렇게 비꼬았다. “사실관계 오류 지적이나 반박도 없이…외교관 업무가 이런 것인가. 언론사 겁주려는 시도였던 듯…” 한국 사람들의 창피요, 국격의 모독이며, 외교의 망신이다. 제 잘못은 눈감고서 나무라는 이웃에 주먹질을 한 셈이니, 나라 꼴을 삼류 후진국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귀를 막고 난폭 운전을 하면서도, 똑바로 하라는 국민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적대시하며 물대포를 직격하는 품성이 바로 그들의 수준이다. 영국은 물대포의 위험성도 크지만 경찰에 대한 국민신뢰를 깬다며 물포사용을 절대 금했단다. 그게 선진국이다.
공자는 국민신뢰와 애민(愛民)을 정치와 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가르쳤다. 국민을 사랑하기는 커녕 삶에 절규하는 60대 비무장 농민을 식물인간 만들어 놓고도 잘못한 게 없다며 더 큰소리치는 권력, 이제는 소도 웃을 ‘소요죄’까지 들먹이는 무지하고 막가는 정권 호위무사들이 한국인의 자존심을 망가뜨리고 한국의 위상을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 김종천 편집인 >